대법원이 '금융실명제 하에서 차명계좌의 예금주는 예금출연자가 아닌 예금명의자'라는 변경된 판례를 남김에 따라 기업들이 차명계좌로 비자금을 관리하는데 급제동이 걸렸다.
또한 이번 판례의 영향으로 예금 거래와 비슷한 성격의 주식 거래에 있어서도 차명 주식계좌를 이용해 주식을 사고 팔 경우 원 소유주가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대법 "차명계좌 소유주는 예금명의자" =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19일 이모(48.여)씨가 예금보험공사를 상대로 낸 예금반환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금융실명제 하에서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예금명의자를 계약 당사자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예금출연자를 계약 당사자로 보려면 출연자에게 '예금반환 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실명제 이전 대법원 판례는 예금 출연자가 예금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차명으로 계좌를 열어도 권리를 행사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예금명의자가 아닌 예금출연자에게 예금반환 청구권을 귀속시킨다는 명확한 약정이 없을 경우 실제 돈의 소유주가 권리를 인정받을 수 없게 됐다.
◆기업, 차명비자금 관리 리스크 커져 = 이에 따라 기업들이 차명계좌로 기업비자금을 관리하는데 상당한 위험부담이 발생하게 됐다.
기업이 회사 임직원 명의로 차명계좌를 개설하고 예금 거래를 한 경우, 임직원이 이후 계좌에 넣어둔 돈이 회사자금이 아니라 본인이 넣어둔 돈이라고 주장하면 기업은 예금반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기업 등이 임직원 명의로 기업체 자금을 관리하는데 위험부담이 급증하게 됐다"며 "이번 판결로 인해 차명계좌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예금명의자와 예금주가 일치해 예금에 관한 법률관계가 명확해질 뿐 아니라, 예금출연자는 차명거래를 할 경우에 안게 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명의로 직접 거래할 것이므로 투명한 예금거래 질서 형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이번 판결이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조성 등 불법 행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 차명거래에도 영향 미칠듯 = 이번 판결에 직접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주식 차명거래의 경우에도 예금 거래와 비슷한 거래 성격으로 인해 간접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주식 거래의 경우에도 예금 거래와 마찬가지로 은행을 통해 계좌를 개설하고 주식거래용 예금을 넣어둔 뒤, 여러 차례에 걸쳐 다량으로 거래를 하기 때문이다.
오석준 대법원 공보관은 "주식 차명거래의 경우 이번 대법원 판결에 직접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다량 거래를 하는 거래 성격이 예금 차명계좌 운영과 비슷하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금융분야 전문변호사도 "이번 대법원 판결의 직접 영향권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유사 성격의 차명 주식거래의 경우에도 향후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주식 거래에 있어서도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부동산 차명 보유의 경우에는 거래 성격이 예금 차명거래나 차명 주식거래와는 다르다"며 "한 차례 부동산 매매 계약을 체결한 후 계약이 종결되기 때문에 이번 판결의 영향과는 무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진우 기자 bongo79@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