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외교문서] 정부, KAL707 영공침범으로 소련과 관계개선 기대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1978년 4월 KAL707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 전투기에 의해 강제착륙 됐던 사건에서
우리 정부는 사건을 계기로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기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우리정부는 소련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승객과 승무원들을 무사히 돌려보낸 것을 평가하고 한국정부를 호의적으로 의식했다고 판단하면서, KAL기 강제 착륙 사건을 오히려 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 당시 해외각국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소련에 사의를 표한 것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수교 관계도 없고 북한의 지지국인 소련에 이같은 표현을 한 것은 소련이 억류했던 2명의 승무원을 순순히 석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동구권과의 교류가 전혀 없었던 한국으로서는 KAL기 사건을 계기로 동구권 특히 소련과의 대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각국 정부는 분석했다.

특히 시베리아 항로 개척과 합작 운영을 추진 고려하는 등 소련과 민간 차원의 협력을 기대했지만, 한국 정부의 이런 ‘희망사항’은 1983년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기에 의해 피격, 탑승자 269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 긴박했던 KAL기 강제 착륙

소련 영공 침범 경위에 대해서는 기장이 피격 30분전쯤에 항로 이탈을 인지하고, 항법사에 항로 확인을 지시했지만, 항법사는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 계속 비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고 이후 KAL707기의 조종사 김모 씨와 항법사 이모 씨는 소련에 억류됐다 풀려난 뒤 덴마크 대사와 가진 면담에서 "항공기의 방향을 알려주는 '자이로 나침반'이 고장 나 소련 영공을 침범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두 승무원은 또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의 '로란 스테이션'(전파를 발사해 항공기의 위치를 파악하도록 하는 장소)가 모두 철거돼 소련 영공에 침범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도 덧붙였다.

당시 소련 측은 KAL기에 대해 영공을 침해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주장했지만, 두 승무원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신호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의도적 침범'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나 두 승무원은 소련 측의 심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영공을 침범한 사실에 대해서는 시인했다.

KAL기는 소련 영공을 침범한 뒤 출격한 소련 전투기를 인식하고 뒤따라갔지만, 중도에 놓치면서 소련 전투기의 포격을 당해 왼쪽 날개가 파손됐다. KAL기는 이후 한 시간 반 쯤 비행하다가 언 호수 위에 착륙했다.

사건 당시 기장은 ‘이 지점에서는 육지가 안 보이는 것이 정상인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지만, 항법사는 ‘지금은 일몰이라 천문항법장비를 변경(수정)해도 효과가 없다’고 말하면서, ‘항로는 정확하니 계속 비행하라’고 보고했다.

기장은 이때부터 계속 레이더 상에 나타나는 육지를 지도로 비교하며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소련기가 출몰한 20분쯤 후에는 레이더에 육지가 전체적으로 잡힌 것으로 볼 때, 이미 소련 영공 깊숙이 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당시 항법사가 왜 ‘항로에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명확치 않다.

대한항공 측은 항법 장비 이상으로 항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사고 항공기의 블랙박스의 조종실 음성녹음장치(Cockpit Voice Recorder)와 비행 자료기록장치(Flight Date Recorder)는 소련이 회수해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는 상태다.

사고기 기장이 소련 공군기의 착륙 유도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경위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사고기를 몰았던 김창규 기장은 소련 전투기로부터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어떤 신호도 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한 반면, 소련 측은 기장 등이 착륙 지시를 봤으면서도 이를 어기고 2시간 동안 도망갔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소련이나 소련의 뒤를 이은 러시아가 여전히 블랙박스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다.

지난 1978년 4월 20일 프랑스 파리를 출발해 미국 앵커리지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KAL707기는 비행 도중 당시 수교가 맺어져 있지 않던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가 소련 전투기의 총격을 받은 뒤 강제 착륙했다. 착륙 과정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이 각각 1명 씩 숨지고, 2명의 중상자를 포함해 10여 명이 기장과 항법상은 억류돼 소련 당국의 조사를 받은 뒤 9일 만에 풀려났다.

박현준 기자 hjunpark@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 어도어 이사회 물갈이…민희진은 대표직 유임 (상보) 김호중 검찰 송치…음주운전·범인도피교사 혐의 추가 [포토] 북한탄도미사일 발사

    #국내이슈

  • 트럼프 "나는 결백해…진짜 판결은 11월 대선에서" "버닝썬서 의식잃어…그날 DJ는 승리" 홍콩 인플루언서 충격고백 안개 때문에 열차-신호등 헷갈려…미국 테슬라차주 목숨 잃을 뻔

    #해외이슈

  • [포토]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현충일 [이미지 다이어리] '예스키즈존도 어린이에겐 울타리' [포토] 시트지로 가린 창문 속 노인의 외침 '지금의 나는 미래의 너다'

    #포토PICK

  • 베일 벗은 지프 전기차…왜고니어S 첫 공개 3년간 팔린 택시 10대 중 3대 전기차…현대차 "전용 플랫폼 효과" 현대차, 中·인도·인니 배터리 전략 다르게…UAM은 수소전지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심상찮은 '판의 경계'‥아이슬란드서 또 화산 폭발 [뉴스속 용어]한-UAE 'CEPA' 체결, FTA와 차이점은? [뉴스속 용어]'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 속도내는 엔씨소프트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