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대사를 만나다] "다자무역 지키는 것, 韓獨의 막중한 책임이자 기회"
게오르크 슈미트 주한 독일 대사
게오르크 슈미트 주한 독일 대사는 "1883년 첫 무역 협정을 체결한 이후 한국과 독일은 매우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다"며 "양국은 천연자원이 부족하지만 전문적 교육과 근면함을 바탕으로 산업 강국으로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밝혔다.
슈미트 대사는 지난 11일 주한 독일 대사관저에서 진행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독일 간 과거의 역사적 유대감과 미래의 협력 과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한국과 독일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과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의료진을 파견해 부산에 병원을 세웠고 1960년대에는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로 건너가 양국 경제 재건에 기여하는 등 깊은 정서적 연결고리를 형성해 왔다.
슈미트 대사는 "독일 역시 분단을 겪었기에 한국이 느끼는 분단의 고통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평화로운 통일을 이뤄냈고 한국도 당시 우리를 지지해주었다"며 "독일은 앞으로도 한국의 평화 통일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독 수교 143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양국의 경제 협력은 이제 첨단 기술과 친환경 에너지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슈미트 대사는 "올해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독일 비즈니스 콘퍼런스(APK)에 독일 경제계 전체가 주목하고 있다"며 "수소 에너지와 재생 에너지 분야의 파트너십은 물론, 40년간 쌓아온 과학기술 분야의 신뢰를 바탕으로 양국 기업들이 가치 사슬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독일 대사와의 일문일답.
게오르크 슈미트 주한독일대사가 서울 성북구 대사관저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며 마이바움(Maibaum)을 설명하고 있다. 마이바움은 5월 1일이 되면 도시나 마을 중심이 되는 곳에 장식된 높은 장대를 세워두는 것을 말한다. 조용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올해로 한국과 독일이 수교한 지 143주년이다. 양국 관계의 시작과 주요 성과를 짚어준다면.
△1883년 고종 황제의 고문으로 독일인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가 일했던 당시 첫 무역 협정을 체결하며 관계가 시작됐다. 주요 성과로 세 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는 한국전쟁 당시 독일의 의료 지원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였지만 독일은 부산에 병원을 세워 1959년까지 운영했다. 둘째는 경제 재건 과정에서의 협력이다.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에 파견돼 '라인강의 기적'에 기여했고 그들의 자녀들이 오늘날 양국을 잇는 강한 연결고리가 됐다. 셋째는 분단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평화 통일을 이뤘고, 이제 한국의 평화 통일 노력을 지지하고 있다.
-독일 정부가 현재 한국과 협력하며 면밀히 주시하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먼저 올해 10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APK'다. 독일 재계가 아시아에서 여는 최대 규모의 행사로 약 1000명의 기업인과 정치인이 방한할 예정이다. 둘째는 2019년부터 이어온 '한독 에너지 파트너십'이다. 재생에너지와 수소 분야의 협력을 논의한다. 셋째는 과학기술 협력이다. 프라운호퍼, 막스 플랑크 등 독일의 주요 연구소들이 한국 연구진과 40년 넘게 신뢰를 쌓아왔다. 특히 한국은 유럽연합(EU) 호라이즌 프로그램에 참여한 최초 국가로서 연구 협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수소 산업과 기후 위기 대응에서의 양국의 시너지는.
△양국은 '한독 수소 협력'을 통해 연구와 비즈니스를 연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최대 항구인 함부르크와 부산항은 파트너 관계로서 수소 수출을 위한 항만 구조 변경 등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또 한국은 기술 강국이자 산업화한 국가로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탈탄소화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과 한국이 협력해 제로 탄소 배출의 방향성을 보여준다면 전 세계에 강력한 신호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삼성SDI 등 한국 기업들이 독일 자동차 회사들과 배터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 등 한국 기업들이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고 기술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등 독일 차에는 한국의 배터리와 디스플레이가 들어가고, 한국 제품에도 독일 부품이 많이 들어간다. 이것이 세계화의 방식이다.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위해선 신뢰가 필수적인데 많은 독일 기업이 한국 파트너를 깊이 신뢰하고 있다.
-독일이 국방 및 산업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는 비결은.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장인정신(Craftsmanship) 덕분이다. 중세부터 이어온 도제 제도와 실습 교육이 공학 및 과학과 결합했다. 이론뿐 아니라 실무 지식을 강조하는 직업 훈련 시스템(Vocational Training)이 독일 산업의 힘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약속을 지키며 규율을 중시하는 태도는 한국 사회와도 매우 닮아 있다.
-다음 세기를 향한 양국 관계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한국과 독일은 자원이 부족한 중견국(Middle-power)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전문적 교육 그리고 근면함이다. 따라서 우리는 개방적인 글로벌 무역 체제를 지켜내야 한다. 현재 미국은 관세를 앞세운 정책을 펼치고, 중국은 자국 시장을 보호하고 중국 기업만을 지원하려는 산업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규칙 기반의 개방적 무역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중견국으로서의 한국과 독일에는 이것이 막중한 책임이자 동시에 기회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발생하는 공급망 차질과 지정학적 불안정에 어떻게 공동 대응할 수 있나.
△공급망에 대한 안보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인공지능(AI)으로 인한 에너지 수요 급증에 어떻게 대응할지, 특정국가의 보호무역주의에 어떻게 대처할지 함께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유엔(UN)과 같은 다자간 구조도 중요하다. 타협에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든 국가가 동등하게 대화해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급변하는 시대에 국제 질서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유엔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가는 서로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과 인권존중이 핵심이다. 인권은 서구의 발명품이 아닌 인권 선언 초안 작성 당시 중국, 레바논, 인도 등 다양한 국가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만든 인류 보편의 가치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유일하고 소중한 행성인 지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또한 어떤 국가도 100% 주권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중국이나 미국 같은 강대국조차도 다른 나라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당시 우리 모두 백신과 정보를 공유하며 바이러스를 이겨냈던 것처럼 기후 변화와 같은 공동의 위기 앞에서도 국가들이 전문 기관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타협점을 찾아가는 다자간 협력 구조가 유지돼야 한다. 그것이 긴장을 완화하고 더 나은 미래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독일 여행을 계획하는 한국인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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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만 가지 말고 작은 도시들을 방문해 보길 권한다. 라인 강변의 '콜론(쾰른)'은 로마 시대 유적과 거대한 고딕 성당이 있는 전통적인 무역 도시다. 특히 2월경 열리는 카니발 축제는 독일인들의 열정과 창의력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로 남녀노소 모두 어우러져 축제를 즐긴다. 또한 내 고향이기도 한 '프라이부르크'를 추천한다. 독일에서 가장 따뜻하고 와인이 유명하며 중세의 역사와 첨단 기술 연구소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대학 도시다.
독일의 수도는 베를린이다. 종교는 개신교와 가톨릭이 주를 이루며 철학과 클래식 음악, 첨단 엔지니어링으로 대표되는 깊은 문화적 토양을 갖추고 있다. 한국과는 매년 활발한 인적·문화적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인천과 프랑크푸르트, 뮌헨 등을 잇는 직항 노선이 상시 운영 중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8시간(서머타임 시 7시간) 느리다.
독일 연방통계청과 2025년 주요 경제 지표에 따르면, 독일 인구는 약 8400만 명이다. 공용어는 독일어이며, 비즈니스와 외교 현장에서는 영어가 매우 능숙하게 통용된다. 독일 면적은 약 35만 7592㎢로 한반도의 약 1.6배 규모다. 유럽의 심장부에 위치해 9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북부의 평원과 남부의 알프스 산맥이조화를 이루는 지형이 특징이다. 지난해 기준 독일은 명목 GDP 기준세계 3위권의 경제 대국이자 유럽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2023년 주한 독일 대사로 부임한 게오르크 슈미트 대사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을 두루 섭렵한 정통 외교 전문가다. 그는 홍콩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런던대학교 아시아·중동·아프리카학 대학(SOAS)에서 극동아시아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아시아통'이다.
슈미트 대사는 1996년 연방총리청 근무를 시작으로 독일 외무부 정무차관실을거치며 정책 결정의 핵심부에서 경력을 쌓았다. 주일본대사관 1등서기관, 주말리 대사관 대사대리, 주스리랑카 대사관 NGO 협력실장 등을 역임하며 현장 외교 경험을 쌓았다. 특히 2009년부터 5년 간 독일 연방 대통령청에서 아시아·호주·아프리카·개발협력과장을 지내며 독일의 대외 정책을 총괄했다.
이후 외무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및 사헬 특임관을 거쳐 주태국 독일 대사를 역임한 뒤 한국에 부임했다. 슈미트 대사는 오랜 기간 아시아 지역의 정세와 경제를 분석해 온 식견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 전쟁 등 여러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 한-독 양국의 전략적 공조와 기술 협력을 이끄는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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