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명 우르르 달리며 '쉿!'…"주말마다 너무 피곤해요" 러닝 열풍에 시민·경찰 '몸살'
서울서만 5월 20개 마라톤·러닝·걷기 행사
비인가 야간 마라톤…관리 사각지대
경찰 2757명 투입·민원 498건 접수
지난 주말 오후 서울 광진구 뚝섬한강공원 자전거 도로. 단체 러닝 크루 10여명이 사람들 뒤에서 "쉿!" "칙!" 하는 입소리를 내며 길을 재촉하듯 몰려왔다. 제대로 비켜달라는 말 한마디 없이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넘나들며 달리는 탓에 시민들은 황급히 길 가장자리로 몸을 피했고, 자전거 이용객들도 속도를 줄이다 멈춰서야 했다. 아이 손을 잡고 걷던 이소진씨(39)는 "요즘 주말 한강은 그냥 러닝 행사장 같다"며 "허가를 받고 뛰는 건지, 그냥 모여 뛰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근 러닝 열풍을 타고 서울 도심과 한강공원 일대에서 마라톤·러닝 행사가 급증하면서 시민 불편이 커지고 있다. 허가 없이 진행되는 비인가 대회까지 등장하면서 안전 사각지대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4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 출발선에 참가자들이 집결해 있다. 최근 러닝 열풍으로 서울 도심 곳곳에서 마라톤·러닝 행사가 잇따르면서 교통 통제와 시민 불편과 안전 관리 부담 등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박호수 기자
20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5월 서울에서 열렸거나 예정된 마라톤·러닝·걷기 행사는 총 20개로 집계됐다. 주 평균 4개꼴이다. 여성 참가자만 모집하는 마라톤부터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과 결합한 행사, 연애 프로그램 콘셉트의 10㎞ 러닝, 한강·하천 일대 걷기 행사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서울 광진구 뚝섬한강공원과 마포구 상암 평화의 공원 일대에서는 사실상 매주 대규모 러닝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국내 마라톤 대회 자체도 폭증하는 추세다. 마라톤 정보 사이트 '마라톤 온라인'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는 530개로 집계됐다. 2022년 346개, 2023년 354개, 2024년 394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가파르다. 행사가 잦아지면서 도심 교통 통제로 인한 시민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종로구 광화문 인근 회사로 주말 출근한다는 직장인 백성민씨(42)는 “주말마다 버스가 우회해 평소보다 20~30분씩 더 걸린다”며 “이젠 마라톤 일정을 먼저 검색하고 약속을 잡을 정도”라고 말했다.
관련 민원도 급증했다. 마라톤으로 인한 교통 혼잡 관련 민원은 서울시의 경우 2021년 15건, 2022년 69건 수준이었지만, 2023년 498건으로 폭증했고 지난해에도 461건 접수됐다.
교통 통제 현장에 반복적으로 투입되는 경찰들의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경찰 2757명이 동원됐다. 서울 시내 마라톤 교통 관리 업무를 맡았던 한 경찰관은 "주말마다 차벽을 세우고 우회 안내를 하다 보니 사실상 마라톤 시즌에는 주말 근무가 일상이 됐다"며 "사전 공지를 못 본 시민들이 현장에서 항의하거나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많아 현장 부담이 크다"고 전했다.
지방자치단체나 자치구 허가 없이 대회를 강행하려 한 사례까지 등장했다. 지난 16일 '서울한강울트라마라톤' 주최 측은 허가 없이 야간 마라톤을 진행하려다 서울시가 형사 고발 검토 방침까지 밝히며 강경 대응에 나서자 행사를 잠정 연기했다. 이후 참가자 문의가 몰리면서 공식 홈페이지를 일시 폐쇄했다가 다시 열었고, 현재는 결국 오는 23일까지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1차 환불 절차를 진행한다고 공지한 상태다. 해당 대회는 지난해에도 서울시 미래한강본부 허가 없이 진행됐다. 당시엔 참가 규모가 크지 않아 서울시도 행사 존재 자체를 뒤늦게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서울 한강공원 산책로에 ‘서울 한강 울트라 마라톤 대회는 승인되지 않은 불법 행사입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서울한강울트라마라톤 대회 홈페이지
원본보기 아이콘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가 진행한 뚝섬 드론 쇼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어떻게 지나가야 하느냐'고 문의하면서 현장 부스를 통해 대회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며 "당시에도 앞으로는 정식 절차를 거쳐 신청하라고 안내했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시 관계자는 "개인이 한강에서 뛰는 것까지 허가받는 개념은 아니지만, 참가자를 모집해 대회 형태로 운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며 "한강 구간은 물론 지나가는 지자체마다 협의와 안전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자치구는 자체 대응에 나섰다. 서초구는 반포종합운동장에서 5인 이상 단체 달리기를 제한했고, 송파구는 석촌호수 일대에서 3인 이상 러닝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성북구 역시 성북천 일대 러닝 크루를 대상으로 ‘한 줄 달리기’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서울시도 올해부터 시가 주최·후원하는 마라톤 대회에 한해 출발 시간을 기존 오전 8~9시에서 오전 7시30분 이전으로 앞당기고, 장소별 참가 인원을 제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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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러닝 문화 자체를 억제하기보다 일정 규모 이상의 단체 러닝 행사에 대한 신고·안전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뉴욕이나 보스턴 등 해외 주요 도시 마라톤은 상징성 있는 일부 대회 중심으로, 서울처럼 도심에서 매주 대규모 행사가 열리는 경우는 드물다"며 "교통 혼잡과 행정력 낭비, 안전 문제 등이 반복되는 만큼 도심 외곽으로 대회를 분산하고 단체 러닝 행사 관리 기준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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