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한 젊은이가 하늘의 별이 됐다. 그는 관악경찰서에 근무하던 30대 수사관이었다. 생전에 그가 동료들에게 보낸 메시지가 공개됐다. ‘사건이 73개, 계속 쌓여만 간다’ ‘이러다 진짜’ ‘길이 안 보여’…. 그의 마지막을 기리는 날, 동료들은 그가 누구보다 성실한 경찰관이었다고 했다. 그가 그토록 버거워하면서도 감당해 내고자 했던 ‘제복의 무게’를 덜어주지 못한 것을, 함께 맞들어주지 못한 것을, 동료들은 자책했다.
‘사건’ 이후 경찰청은 대책을 내놓았다. 경찰 지휘부가 팀장을 맡아 근무 여건 실태를 진단하고, 사건 배당 전 접수단계부터 유사한 사건은 병합해 수사하겠다고 했다. 업무 효율화, 인력 재배치 같은 방안들이 나왔다. 경찰관들의 마음 건강도 보살피겠다고 했다. 경찰 안에선 "공무원 조직에서 이 정도 대책이 나왔으면 훌륭한 것 아니냐"고 한다는 말까지 들려왔다.
그런데 일선의 목소리는 달랐다. "근무 개선안?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A 경위)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B 경사) "또 엉뚱한 일을 시킬 것 같다."(C 경사)… . 혹여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대책’이 아니다.
수사관의 하루는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얘기를 들어야 하고, 보고서 작성은 끝없이 이어진다. 사건의 아픔은 그대로 경찰관의 아픔이 되기도 한다. 그 힘든 일을 받아내는 것은 경찰관 스스로 제복의 무게를 감당하겠다는 각오, 사명감일 것이다. 그 무게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되고 고통으로 바뀔 때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진다. 최근 5년간 경찰관들의 비극이 115건이나 있었다. 경찰 지휘부는 그때마다 ‘대책’을 말하지만, 비극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사회의 무관심도 이런 현상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경찰은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다. 경찰은 국민으로부터 무한의 책임을 요구받고 있고, 국민이 경찰에 기대하는 것도 많기에 경찰관의 잘못에는 때로 지나칠 정도의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렇게 밤낮없는 근무, 폭주하는 사건,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와 고충의 반복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경찰관들이 있다. 그들의 손을 잡아 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경찰 제복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담은 상징이다. 제복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그 무게를 짊어진 사람들이 존중받아야 한다. 제복 입은 경찰관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국민의 삶과 생명을 지키는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경찰 지휘부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썼으면 한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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