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축구 영웅, 브라질 펠레와 아르헨티나 메시 중 누가 더 뛰어난 선수일까.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면 이건 어떤가. 미국프로농구(NBA) 전설인 마이클 조던과 르브론 제임스 중에서 누가 더 농구 실력이 뛰어날까.
답을 정하기 쉽지 않은 물음이다. 서로의 전성기가 다른 데다 시대 변화에 따른 기술 발전은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만약 앞선 물음에 대답하는 이가 있다면 각자의 기억 속에 각인된 정보를 토대로 한 판단일 가능성이 있다. 특정 영역에서 누가 최고였는지에 관한 물음은 우문(愚問)일지 모르나, 그 자체로 아련한 추억을 상기하는 삶의 엔도르핀이다.
최근 바둑계에도 그 아련함의 공유가 번져나간 사건이 있었다. 현재 세계 바둑계의 최강자로 평가받는 신진서 9단과 중국에서 경외감의 대상으로 바라봤다던 전설적인 인물인 이창호 9단의 맞대결이다. 두 기사는 지난달 11일 제47기 SG배 한국일보 명인전 8강에서 맞붙었다.
이창호는 49세, 신진서가 24세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인 25년은 강산이 두 번은 더 변할 세월이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그 시대를 평정했던 두 명의 바둑 기사 대결. 이창호가 누구인가. 인류 최강이라는 수식어도 모자랄 정도로 극강의 기력을 보여줬던 인물 아닌가. 신진서는 또 어떤가. 현재 바둑계를 쥐락펴락하는 중국의 거센 풍랑에 사실상 홀로 맞서며 한국호(號)를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인물이다.
이창호와 신진서, 두 전설의 승부는 어떻게 됐을까. 결과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무승부로 끝이 났다. 바둑은 덤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승부가 이뤄진다. 정말로 미세한 바둑이라도 0.5집 차이로 승 또는 패가 갈린다. 이창호와 신진서 대결에서는 ‘3패빅’이라는 희귀한 장면이 나오면서 승패를 가릴 수 없었다. 패(覇)가 3개 이상 나오면 서로 돌아가면서 따낼 수 있기 때문에 승부는 끝이 나지 않는다.
한국 바둑의 절대강자 신진서 9단이 지난 8월4일 오후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군립 하정웅 미술관에서 제10회 전라남도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 세계프로최강전 4강 두 번째 경기를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전성기가 이미 지난 이창호는 그렇게 바둑 팬들에게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안겨줬다. 이창호는 지난달 27일 프로통산 1900승(1무 794패)의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1986년 입단 후 38년 만이다. 앞서 1900승을 달성한 한국 바둑의 상징, 조훈현 9단의 뒤를 이었다. 이창호가 이은 조훈현의 길을 이제는 신진서가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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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기사들은 어쩌면 끊어지지 않는, 영원히 이어지는 길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생을 다하는 그날이 오더라도 바둑기사가 남긴 기보(棋譜)는 후대에 전해지기에…. 기보에는 그이가 살아온 인생이, 땀과 눈물이, 환희와 감동이 오롯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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