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찬란하지 않아도 별일 없이 산다<3>
인생에 순서라는 걸 누가 정해 놓은 것인가.
처음부터 그런 순서라는 게 불변의 법칙은 아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틀에 맞추어 살고 있다. 그 틀에서 벗어나면 크게 잘못되는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해야 낙오되지 않는다며 내 잣대가 아니라 남의 잣대를 들이대곤 했다.
군대 갔다 와서 다시 공부하겠다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도 대학 공부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밀리듯 가고 싶지 않다는 뜻이리라.
뜻이야 좋지만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네 인생이니까… 책임도 네가 지는 거야."
편하게 말했지만 대학이 아닌 군대에 먼저 가겠다고 하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더없이 불편하고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책임이란 말에 힘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표현은 책임이라고 했지만 그 밑바닥에는 나중에 닥칠 어려움은 네가 겪어야 한다는 벌칙의 의미였다.
(중략)
살아보니 먼저 간다고 먼저 도착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의 의미 또한 도착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그 여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가는 길이 자신에게 얼마나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이제 녀석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짙푸른 바다에 작은 배를 띄우고 아득히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목적지가 어디가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어떤 도시 어떤 부둣가가 될지 모른 채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바다는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때론 거친 폭풍으로 때론 고요하고 아름다운 잔물결로 녀석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 모든 변화를 온전히 혼자 겪어내야 하는 것이다.
-어현, <찬란하지 않아도 별일 없이 산다>, 문학공감, 1만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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