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삶은 대개 원치 않은 것과 마주치기 쉽게 만들어져 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도 있지만 행복할 의무도 있기 때문이다. 의무를 다하려면 삶을 마주 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등 돌리지 않고 마주 보는 삶은 누추하고 험하지만 진솔한 교훈이 있다. 에세이 <찬란하지 않아도 별일 없이 산다>를 쓴 어현 작가는 "마주친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풀어나가느냐가 문제"라며 "고통 속에는 분명 숨은 가르침이 있고, 그 가르침을 발견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고 강조한다. 글자 수 867자.
[하루천자]찬란하지 않아도 별일 없이 산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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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순서라는 걸 누가 정해 놓은 것인가.


처음부터 그런 순서라는 게 불변의 법칙은 아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틀에 맞추어 살고 있다. 그 틀에서 벗어나면 크게 잘못되는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해야 낙오되지 않는다며 내 잣대가 아니라 남의 잣대를 들이대곤 했다.

군대 갔다 와서 다시 공부하겠다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도 대학 공부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밀리듯 가고 싶지 않다는 뜻이리라.


뜻이야 좋지만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네 인생이니까… 책임도 네가 지는 거야."


편하게 말했지만 대학이 아닌 군대에 먼저 가겠다고 하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더없이 불편하고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책임이란 말에 힘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표현은 책임이라고 했지만 그 밑바닥에는 나중에 닥칠 어려움은 네가 겪어야 한다는 벌칙의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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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살아보니 먼저 간다고 먼저 도착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의 의미 또한 도착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그 여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가는 길이 자신에게 얼마나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이제 녀석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짙푸른 바다에 작은 배를 띄우고 아득히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목적지가 어디가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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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 어떤 부둣가가 될지 모른 채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바다는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때론 거친 폭풍으로 때론 고요하고 아름다운 잔물결로 녀석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 모든 변화를 온전히 혼자 겪어내야 하는 것이다.


-어현, <찬란하지 않아도 별일 없이 산다>, 문학공감, 1만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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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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