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이번 주 '하루만보 하루천자' 필사 콘텐츠는 어현 작가의 에세이 <찬란하지 않아도 별일 없이 산다>에서 가져왔다. 작가가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이웃으로 수십 년을 살아오며 사람들과 부대끼고 상황에 치일 때마다 자신을 추스르며 깨달은 것들, 사소한 일상으로 위장하고 나타났지만 사소하지 않은 그 무엇을 서른일곱 가지의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로 풀어 귓속말하듯 들려준다. 글자 수 878자.
[하루천자]찬란하지 않아도 별일 없이 산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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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이라는 게 알 수 없는 물질들이 광속으로 날아오는 무한대의 우주 공간을 맨몸으로 달리는 것처럼 조마조마한 일이 아닐까 싶다.


때론 우연히 행운과 마주치기도 하지만 대개는 불운과 만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몸을 피하다 불운이 먼저 알고 길목을 지키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고 보면 아무렇게나 불규칙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불운 혹은 불행이라는 괴물체들도 어쩌면 나름대로의 법칙과 생명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대개의 사람들이 흉측하고 불쾌한 일들과 오래 동거(?)하고 싶지 않아서 온갖 방법을 짜내 보지만 그건 당하는 사람의 마음이지 불행은 쉽게 협조하지 않았다.


불행, 불운 혹은 재수 없는 일들은 보이지 않는 생명력을 갖고 사람을 숙주로 삼아 번식하곤 했다. 살아남자면 온 힘을 다해 그것들과 싸워 내야 하는데 무엇을 무기로 삼을 수 있을까. 진정 그것을 당해 낼 무기가 있기나 한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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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불행에 대처할 필살기가 삶 안에 포함되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설령 있다고 해도 불행이나 불운은 방심한 틈을 타서 나타났다. 필살기를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느닷없이 불행과 마주치게 되면 대개의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오려 기를 쓰지만 그렇게 과도한 에너지를 퍼붓는다고 불행의 수명(?)이 단축되지 않았다.


불행에는 고유한 생명력이 있고 소멸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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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나쁘든 좋든 보이지 않는 생성과 소멸의 단계가 있다. 아무리 기를 써도 그것들의 수명이 남아 있는 한 사라지지 않았다. 소멸의 시간이 될 때까지 동거(?)하는 수밖에 없다. 때론 생성되자마자 소멸하는 것도 있겠지만 자연의 이치란 게 못되고 성가신 것일수록 끈질기고 지독스러웠다.


-어현, <찬란하지 않아도 별일 없이 산다>, 문학공감, 1만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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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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