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혹한기에 복수의결권제 도입 시급"…법사위 문턱 넘을까
"투자를 받자니 최대주주 지분 희석으로 회사가 넘어갈 것 같고, 안 받자니 직원들 월급 주기가 어려워 오래 버티기 힘들 것 같다."
국내 한 교육분야 스타트업 C레벨(분야별 최고 책임자) 인사는 현재 자신의 회사가 딜레마에 빠졌다고 했다. 기존에 받은 투자금이 거의 바닥나 추가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과거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지분을 투자자들에게 많이 넘긴 상태다. 더 이상 창업자 보유 지분이 줄어들면 경영권을 위협받는 수준에 이르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투자환경이 갈수록 악화되는데 복수의결권제라는 보호장치가 없으면 많은 벤처기업이 성장을 멈추게 될 것"이라며 "이런 심각한 상황을 국회가 알아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복수의결권제는 창업자가 보유한 주식 1주당 2개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창업자가 투자 유치 과정에서 경영권 위협없이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도록 하는 방어장치다. 벤처·스타트업계에서 15년 넘게 도입 논의가 이뤄지다 2020년 12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복수의결권제 도입을 담은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의 반대에 가로막혀 아직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복수의결권제는 그동안 여야 의원 모두가 활발히 법안을 발의했을 정도로 도입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다. 2020년 총선 당시 다수석을 점한 민주당의 '2호 공약'이었다. 또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가 복수의결권제 도입이다. 그래서 현재 법사위원 대부분이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박 의원과 조 의원은 복수의결권제가 '1주1표'라는 상법 대원칙을 훼손하고 주주 이익도 침해한다고 본다. 중기부가 제출한 복수의결권제 법안을 보면 1주당 의결권수는 최대 10개까지 가능하다. 조 의원은 "민주주의에서 1인1표제에 예외를 두는 것과 같다"며 "위헌소지가 있고 상법 등 타법과 충돌 가능성도 있어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벤처업계에서는 복수의결권제 도입 취지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반박한다. 복수의결권제 도입 과정에서 이미 충분한 보호장치를 마련했다는 주장이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정책본부장은 "복수의결권제를 비롯한 많은 특별법들이 제도 도입에 따른 사회·경제적 이익이 크기 때문에 기존 법에서 예외를 두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복수의결권제를 도입해도 감사 선임과 해임, 이사 보수 결정, 배당 등 중요한 사안은 보통주와 같은 1주1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돼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벤처업계 관계자는 "상법에서도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 발행을 허용하고 있는데 그럼 우선주도 1주1표 원칙을 훼손하는 건가"라고 물었다.
복수의결권제를 도입한 다른 국가들에 비해 발행 요건이 까다로워 재벌세습 등 악용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17개 국가가 복수의결권제를 시행중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창업주 지분이 30%이하일 때 주주 75% 동의를 거쳐야만 복수의결권을 발행하도록 설계했다"며 "또 복수의결권 발행 후 대기업집단에 포함되면 즉시 보통주로 전환하는 등 긴 공론화 과정에서 다양한 방어 장치들을 마련해 개정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벤처특별법이 아닌 상법에서 기업지배구조 관련 현행 제도와 재무 관련 규정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도입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복수의결권을 부여 받은 경영진에 대한 견제장치가 아직 미약하다는 것이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의결권이 10배가 되면 의사결정 영향력과 지배력도 10배가 된다"면서 "자본금 10억 미만인 비상장사는 감사 의무와 이사회 구성 의무, 사외이사 선임 의무가 없는데 복수의결권제와 결합하면 마땅한 견제수단이 없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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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을 계속 붙잡아둘 게 아니라 조속히 국회 본회의로 넘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문재인 정부 말기 중기부 장관이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권칠승 의원은 "이미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충분히 검토한 법안인 만큼 본회의에서 총의를 모아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중기부 관계자는 "이달 국회 본회의가 23일과 30일로 잡힌 만큼 아마 그 사이 법사위 전체회의가 소집될 것”이라며 “'데스밸리'(창업 초기 스타트업이 겪는 침체)에 놓인 벤처기업이 많은 만큼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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