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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불법에 관대한 조직문화가 사라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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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불법에 관대한 조직문화가 사라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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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을 결정하는 만큼 나름 권력기관으로 주장되기도 한다. 이곳에서 간부로 일하려면 보통 인사혁신처의 국가직 5·7급 공채에 합격해야 한다. 혹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가 돼야 한다.


최근 방통위의 국장, 과장, 대학교수인 심사위원장이 구속돼 새삼 놀랐다. 2020년 종편 재승인 심사 때 이들 국·과장이 TV조선의 최종 평가점수를 알려주며 점수표 수정을 요구하자 심사위원장이 점수를 낮춘 혐의였다. 선망받는 직장에 다니는 국·과장과 교수는 왜 인신구속 되는 상황에 휘말릴까? 그 점수를 만지는 것은 담당자로선 얻는 이익이 없고 위험이 큰 행위다. 우리 사회 보통의 직장인은 자기만의 ‘상황 모형’으로 이 사건을 해석할 수 있다. ‘조직문화라는 게 있어, 거역하기 어려운’ 이 사건을 보면서 대개 이렇게들 생각한다.

2019년 서울 모 대학 대학원에서 강의할 때였다. 야간 수업이라 직장인 수강생이 많았다. ‘통합행정’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수강생들에게 질문했다. "상사가 조직을 위해 어떤 불·탈법적인 일을 해주면 좋겠다고 요청합니다. 따르자니 그런 일을 하는 게 마음에 걸리고 께름칙합니다. 거부하자니 ‘로열티가 없네’ 하는 말이 나올 거고 내부에서 도태될 거 같아 불안합니다. 해법은 무엇입니까?"


한 명의 수강생도 해법을 찾지 못했다. "그런 상황이 되면 공황 상태가 될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교육적으론 "상사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한다"고 해야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해법은 관운(官運)"이라고 했다. "관운이 좋은 사람은 그런 상황을 만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말이었다.


월성원전 자료삭제에 관여하고 감사원 감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은 산업통상자원부 국장, 과장, 서기관은 얼마 전 대전지법에서 집행유예 실형을 선고받았다. ‘탈원전 정부’ 시절 월성원전 한시 가동을 보고했다가 장관의 호통을 들은 뒤 가동중단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논란, 자료삭제 논란이 발생했다. 이 산업부 사건도 ‘조직문화라는 게 있어, 거역하기 어려운’ 상황 모형으로 설명된다.

미국 국무부 보고서는 2021년 한국에 대해 "정부 부패에 대한 ‘수많은(numerous)’ 보고가 있었다"고 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22년 부패인식지수에서 한국은 윤석열 정부의 목표치인 20위권을 밑도는 31위에 그쳤다. 한국행정연구원 조사에서 기업 종사자의 61.9%는 공공 부문에서 부정부패가 심하다고 했다.


윗선의 뜻이라는 이유로 소소한 불·탈법을 아무렇지 않게 강요하는 조직문화는 직장인에겐 심각한 잠재적 위협이다. 이런 문화는 정치인-공직자-공기업-민간기업으로 타고 내려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혐의에 관한 검찰수사에 찬성하는 여론이 대체로 높은 것도 부패 문제가 위중한 우리 현실과 무관치 않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적폐 수사로 야당을 탄압했다고 주장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야당을 탄압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두 정당이 번갈아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는 동안 우리나라는 조금 더 투명해졌다고 본다. 한 세대가 지나면 강산도 바뀌고 문화도 달라진다. 향후 30년 동안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전임 정권의 부정부패를 서류위조까지 찾아내 합당하게 처벌하면 불법에 관대한 조직문화는 사라질 것이라고 본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숫자 올려라. 내려라, 문서 없애라, 넣으라고 도저히 지시할 수 없는 문화가 될 것이다.


허만섭 강릉원주대 교양교육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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