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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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물건을 결제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가게에서 무언가를 찾아달라고 할 때도, 음식을 먹고 치워야 할 때도 도와드리겠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급여를 받으며 자신의 노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물건을 사는 소비자에게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분명 이전에는 없던 문화다. 누군가는 이것을 주인 의식이 부족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특징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타인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라고도 한다.


나는 여기에서 이반 일리치가 말한 ‘그림자 노동’이라는 개념을 떠올린다. 현대 사회에서는 재화의 생산에 누군가의 무급 노동이 필수적인 보완물로서 요구된다는 내용이다. 서비스업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렇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하나 사 먹는다고 해도 모두가 그 노동에 동원된다. 키오스크 앞에서 먹고 싶은 햄버거와 음료와 사이드 메뉴를 하나하나 고르고, 결제를 위해 카드를 넣고, 자신의 번호가 뜨면 직접 음식을 가지러 갔다가, 적당한 자리를 찾아 경쟁해가며 앉고, 다 먹고 나서 트레이에 다소곳이 그 부산물을 담아 분리수거까지 직접하고 나면 한 끼의 식사가 끝난다. 대형마트에서도 그림자 노동은 이어진다. 카트를 대여해 줄 테니 알아서 상품을 끌고 다니라고 하고, 무인 계산대에서 직접 바코드를 찍어 계산하라고 하고, 내가 가져온 장바구니에 그것들을 욱여넣고 주차장까지 걸어가게 한다.

가구 매장에서도 더 이상 배달과 설치를 당연스레 해 주지 않는다. 전시된 가구를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지정된 구역에 가서 그 재료를 하나하나 카트에 담고, 간신히 차에 싣고, 집까지 운반해서, 공구를 동원해서 직접 조립과 설치까지 한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일도 그렇다. 조금이라도 싼 데를 찾아 들어가면 거의 셀프 주유소다. 기름을 채우는 데 한 세월을 보낸 앞 차를 몇 대 보내고 기계 앞에 서서, 비닐 장갑을 끼고, 정전기 패드에 손을 대고, 이것저것 터치하다가, 기름 때 묻은 주유기를 잡고, 주유를 끝내고, 주유구까지 확실히 닫고, 다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건다.


얼마 전엔 아이들과 함께 분식집에서 돈까스를 먹고 일어났다. 그때 나를 지켜보던 주인이 말했다. "여기 셀프예요." 그가 가리킨 손가락 끝엔 먹고 난 식기를 퇴식구까지 직접 가져다둬야 한다는 안내 문구가 선명했다. 보다 저렴하고 위생적인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아아, 죄송합니다. 음식값이 조금 싼 이유가 있었군요.

소비자의 편의와 비용 절감을 위해 그렇게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기업은 이제 응당 제공했던 노동을 소비자에게 계속해서 넘기고 있다. 그렇게 절감된 비용이 우리에게 돌아오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다만 그러한 문화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에게 있어서 노동이란 일방향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개념이 된 듯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도와드리겠습니다"라는 그 노동의 언어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소비자로 살아오는 동안 자연스레 몸에 새겨지지 않았을까. 한 세대의 언어를 보면 한 시대의 문화가 보인다. 일하는 누군가가 나의 물건 구매와 결제를 도와주겠다고 하면, 네 우리 함께 우리의 노동을 끝내봅시다, 하는 연대의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새로운 시대의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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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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