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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착 탈북민]②목숨 걸고 '억압' 벗어나니 '차별'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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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구해도 따돌림에 버티기 어려워
'억양·문화적 차이'로 차별 경험 77.7%
'자살 충동' 경험 13.3%…일반국민 2배
"사회 관계망 단절되면 탈북민 더 취약"

편집자주탈북민을 가리켜 '먼저 온 통일'이라는 표현이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탈북민 정착이 곧 통일'이라는 지상과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하지만 억압을 벗어나 남한으로 온 탈북민은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다. 목숨을 걸고 고향을 등질 만큼 간절했던 기대는 왜 무너졌을까. 남녘에 불시착한 탈북민의 어려움을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말을 하는 순간 (억양 때문에)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지는 게 느껴져요."

[아시아경제 장희준 기자] 최근 서울 동대문구 장한평역 인근에서 만난 북한이탈주민(탈북민) 30대 여성 김하나씨(가명)는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떤 점이 가장 어렵느냐'는 질문에 이처럼 답했다.


함경도 출신이라는 김씨는 수년 전 중국을 거쳐 홀로 남한으로 넘어왔다. 가깝고도 먼 북녘 땅에 부모님과 남동생을 남겨두고 온 그는 열심히 돈을 벌어 남은 가족을 데려올 작정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도 가족을 다시 만날 날을 손꼽으며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고,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 작은 병원에서 첫 일자리를 구했다. 그러나 따돌림을 견디지 못한 그는 6개월도 못 버티고 병원을 떠나야 했다.

북한이탈주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북한이탈주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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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동료 탈북민의 소개로 한 공장의 사무직 자리에 들어간 적도 있다. 직원 중에 탈북민이 있어 잘 적응하나 싶었지만, 상사의 성희롱에 시달려야 했다. 김씨는 "회식 때마다 옆에 앉혀두고 술을 따르라고 하거나 '북한에선 연애도 맘대로 못하지 않았느냐' 하면서 무례한 발언도 마구 했다"며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다들 나를 이상하게 볼까봐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현재 경기도의 한 물류센터에서 재고조사 업무를 담당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수입은 최저임금에 가깝지만, 처음으로 1년 넘게 유지한 직장이라고 한다. 그는 "억양을 고치려고 인터넷으로 스피치 강의도 들어보고 펜을 물고 연습도 해봤지만 20년 넘게 살아온 말투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며 "지금 하는 일은 바코드만 찍으면 돼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적으로 덜 불편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뭘 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경기 시흥시에 거주하는 40대 남성 이평화씨(가명)는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한 지 4년째다. 열악한 접경지역에서 군인으로 복무하기도 했던 그는 남한에 오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나선 '꿈의 공간'은 이씨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외모도 언어도 같은데 '이방인 취급'을 받는 게 더 안슬프다(안쓰럽다)는 게 이씨의 하소연이다.

그는 "처음 인력시장을 통해 현장에 나갔을 때 작업반장에게 '빨갱이냐', '간첩이냐' 소리까지 들었다"며 "남한에만 오면 자유롭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외롭기만 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살고는 있지만 바닥없는(의지할 곳이 없는) 생활에 지쳐간다"며 "이미 나고 자란 고향을 등졌는데 이곳마저 떠나야 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언론이나 방송에서 탈북민에 대한 소식이 나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도 했다. 좋은 일로 나오나, 나쁜 일로 나오나 항상 주변에서 들리는 평가는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얼마 전에도 소식(백골 시신)을 봤다"며 "우리를 불쌍하게 봐달라고 할 생각도 없다. 그저 똑같은 사람으로만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미지출처=남북하나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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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을 벗어나 남한으로 온 탈북민은 여전히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적 고립으로 구직·경제 활동이 위축되고 나아가 '경제적 빈곤'까지 더욱 가중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남북하나재단의 2021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에 따르면 차별이나 무시를 경험한 탈북민 중 77.7%는 그 이유로 말투를 비롯한 소통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꼽았다. 뒤이어 남한 사람이 탈북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답이 45.5%, 전문적 지식 등이 남한 사람에 비해 부족한 탓이라는 답이 20.1% 순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 같은 고립감이 정착은 물론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탈북민 가운데 자살 충동을 느낀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은 13.3%로, 일반국민(5.2%)의 2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여성으로 좁히면 15.1%로 더욱 높아진다. 자살 충동을 경험한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26.8%, 신체적·정신적 질환 25.8%, 외로움(고독) 16.4% 순으로 나타났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다른 문화적 배경이나 집단에 대해 수용성이 높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다"며 "이것이 탈북민의 정착에 근본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고립감을 느끼면 구직이나 경제활동에 대한 의지를 잃게 되는데 '은둔형 외톨이' 현상과 같은 맥락"이라며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될 경우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탈북민이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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