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열 달 가까이 흘렀지만,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142명이 목숨을 잃었다. 질병이 아닌 사고로 숨진 노동자가 446명이나 된다. 반복되는 사고에도 작업장 안전 환경 개선은 여전히 거북이걸음이다. 안전 불감증, 위험의 외주화가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음에도 효율성을 앞세운 시장 논리에 밀려 개선되지 않고 있어서다.
지난 4월 매일유업 평택공장에서 30대 노동자가 공장 외부 팔레트 자동공급기에 몸이 끼이는 사고, 지난 15일 SPC 계열사 SPL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20대 노동자의 기계 끼임 사고가 그랬다. 이번 사고의 경우 해당 작업은 ‘2인 1조’가 원칙이었지만, 동료 직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고가 발생했다. 또한 사고가 발생한 기계에서는 덮개를 열면 자동으로 운전이 멈추는 안전 제어장치도 없었다. 무엇보다 일주일 전 같은 공장에서 손 끼임 사고가 있었음을 고려한다면 이번 사고는 예고된 참사에 가깝다. 만약 그때라도 안전 환경을 점검하고 사고 예방 조치를 취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정부의 안전 점검 시스템도 안일했다. 사고가 발생한 SPL 제빵공장은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안전경영사업장 인증을 두 차례나 받은 업체다. 안전경영사업장 인증 제도는 안전공단이 사업장으로부터 자율적으로 인증 신청을 받아 심사한 뒤 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장에 인증서를 수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문제는 SPL 제빵공장의 업무상 재해 중 40.5%가 끼임 사고였음에도 안전공단이 끼임 방지를 위한 안전 제어장치도 없는 생산시설에 안전 인증을 내줬다는 점이다.
현재 고용부는 중대재해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사고가 일어난 SPL 제빵공장은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다.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사고 예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국회는 오는 24일 고용부 종합감사에서 SPL 대표이사를 증인으로 소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의 책임을 모회사인 SPC까지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고 난 SPL의 경우 SPC의 계열사이긴 하지만, 경영 재무 등 독립된 회사이기 때문이다. 다만 SPC가 SPL의 실질적인 관리자 역할을 했고, 안전조치를 내릴 책임이 있다는 결론이 나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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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만명당 산재 사망자 비율은 0.43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와 산업 구조가 비슷한 독일은 0.15, 일본은 0.13에 그친다. 산재 왕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중대재해법이 시행됐지만,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까지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확한 사고 경위 파악과 함께 구조적 문제는 없는지 파악하라고 각별한 관심을 보인 만큼 철저한 수사와 더불어 적극적인 중대재해법 적용이 필요하다. 더이상 산재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재발 방지 노력이라는 말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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