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이스탄불을 걸으며 서울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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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유럽 학회 발표 후 튀르키예에 들러 서울대 재직 시절 제자도 만나고 이스탄불에도 다녀왔다. 여러 문명의 역사가 축적된 이스탄불은 오래전부터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코스모폴리턴 성격을 지닌 도시였다. 서울처럼 역사가 오래된 도시답게 역사적 경관을 만날 수 있는 오래된 지역이 있는데, 비잔티움 제국이 만든 커다란 성곽 안 반도 지역이 대표적이다.


이 성곽 안에 남아 있는 역사적 경관과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스탄불은 1950년대 비잔티움 제국 시대의 상징인 아야소피아를 중심으로 보존을 시작한 뒤 점차 보존 지역을 확장했다. 오늘날 이 지역 대부분의 건물은 주민들이 살던 흔적이 남아 있긴 하지만 주로 관광 관련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길을 따라 조금 걸어 들어가면 ‘세계에서 오래된 재래시장 중 하나로 꼽히는 카팔르차르슈가 있다. 하지만 주변 상업 지역을 지나면 대뜸 주민들이 사는 주거 지역이 나오면서 성곽 가까이까지 밀도 높고 오래된 마을이 이어진다.

오래된 주택들이 많은데 유지 및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단독주택, 상태가 비교적 괜찮아 보이는 연립주택,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 비어 있는 집이 뒤섞여 있다. 주민들 대화에는 튀르키예어 대신 아랍어가 자주 들리고 동네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2011년 이후 정부에서 받아들인 시리아 난민들이 주로 이 지역에 밀집해 살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관광하기에 위치가 좋아 소규모 호텔이나 에어비앤비도 꽤 있어 다양한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만날 수 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한국 기준으로 이 지역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이런 곳은 ‘공동화되고 있다’는 판단을 피해 가기 어렵다. 이 때문에 오래지 않아 재개발 또는 도시재생사업의 대상이 될 것이다.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 모두 다 철거해 버린 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도시는 ‘깨끗해질 것’이다. 그게 아니면 이미 이곳은 ‘죽은’ 상태로 취급돼 이런저런 단기적인 사업을 펼쳐 해마다 새로운 방식으로 ‘재생’을 위한 시도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스탄불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노후 목조주택을 수리하거나 신축을 통해 역사적 경관을 지키면서도 꾸준히 주거 공간을 유지, 확보하고 있다. 지진의 위험도 있는 곳이라 건물의 안전 확보는 시급하다. 노후가 심각해 위험한 집은 철거한 뒤 주차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한정된 예산은 늘 고민이다. 그러나 소위 대규모 재개발은 제한돼 있어 이 지역의 정체성은 잘 유지하고 있다. 그 덕분에 여전히 이 지역에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상권이 살아 있고, 인구의 구성은 달라져도 관광지나 유적지가 아닌 주민들이 사는 동네로 유지할 수 있다. 관광객을 위한 공간도 물론 있지만, 그 역시도 동네의 활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서울 역시 2000년대 초반부터 북촌을 중심으로 한옥 지원 사업을 시작했고, 점차 서울 전역의 한옥으로 그 대상을 넓혀 왔다. 그런 노력으로 신축 한옥도 늘고 기존 한옥의 개보수도 상당수 진전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피맛골은 이미 사라졌고, 을지로도 조만간 옛 정취를 잃어버릴 것이다. 이로써 서울의 역사적 경관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상실됐다. 이것이 과연 옳은 방향일까.


대규모 재개발 사업 대신 다양한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으로 이어지는 이스탄불의 오래된 거리를 걸으며, 나는 ‘지나치게 깨끗한’ ‘깨끗해질’ 서울의 오래된 거리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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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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