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위기보다 외환보유액 많지만
가계·기업부채가 또 다른 '뇌관'

[시시비비]추경호 경제팀, 자신감인가 자만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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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열리나 했더니 경제 위기의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그것도 한국 경제가 몸서리치는 ‘10월’에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8년 10월이 그랬다. 외신들은 당시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고갈되고 있다며 외환위기 가능성을 앞다퉈 경고했고 이는 결국 현실이 됐다. 그보다 앞선 11년 전은 더 참혹했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이었던 10월, 그때도 외신들은 경쟁적으로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는 보도를 했는데 한국 정부는 바로 다음달 손을 벌렸다.


2022년 10월도 다르지 않다. 올 들어 이달 10일까지 누적 무역적자가 사상 처음으로 300억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8월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자 경제위기설이 급속히 확산 중이다. 무역·경상수지 적자와 함께 시작한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와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와 이상할 정도로 다른 게 있다. 바로 윤석열 정부 경제팀이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지에서 "한국의 경제 상황은 1997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한 IMF나 무디스 등의 평가를 적극 홍보하며 위기설에 선을 그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옛날 같은 위기는 아니다. 빈말 아니다"며 결을 같이 했다. 국민 대다수가 위기를 느끼고 있는 지금, 윤 정부 경제팀이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1997년, 2008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두둑한 외환보유액 덕분이다.


그런데 그때와 비교되는 또 다른 지표가 있다. 폭풍전야에 놓인 가계와 기업의 ‘부채’다. 올 6월 말 기준 한국 가계와 기업의 부채 총액은 4700조원이다. 문제는 부채가 사상 최대 규모인 이때 기준금리가 3.0%에 도달하면서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빚을 가진 서민들과 자영업자, 중소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가 나라의 빈 곳간에서 비롯됐다면 지금은 가계와 기업의 빚이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같이 중차대한 시기에 "(금리 인상이)거시 전체로 봐서는 안정에 기여하는 면도 있다"는 이 총재 발언은 한가하게 느껴질 뿐이다. 정부가 괜찮다고만 하면 가계와 기업의 경각심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차라리 지금은 국민들을 안심시키기보다는 "가계부채가 최대 리스크다. 빚을 줄여라"라며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더 와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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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경제학자인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지금의 경기 침체는 대공황이나 2008년 금융위기 때와는 다르다"며 ‘경험주의’에 기반한 정책 입안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경제를 이해하려면 역사도, 정치도, 심리학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경제팀은 지금 과거 지표에 얽매여 펀더멘털을 따질 때가 아니다. 어느 때보다 ‘부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국민들이 왜 불안해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취약계층의 채무상환 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체감 가능한 방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경제팀이 펀더멘털에 자신감을 보이는 동안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교수가 말한 것처럼 ‘빚으로 지은 집’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바뀌는 것도 한순간이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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