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 2019년 이후 모처럼 한국에 왔지만 변치 않는 것이 있다. 아파트의 인기다. 이 인기는 시들 줄도 모르나 보다. 변한 것도 있다. 부쩍 늘어난 고층 아파트와 오피스텔 덕분에 주요 도시의 스카이 라인이 깜짝 놀랄 만큼 높아졌다. 서울은 물론 다른 도시를 가도 앞에 버티고 선 것 같은 아파트를 만난다. 자주 보니 생각도 많아진다. 왜 이렇게 다들 똑같을까.
개성 없고 삭막한 아파트는 한국만의 사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크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편리성은 극대화돼 가는데, 미학적 발전은 참으로 미비하다. 최근에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 단지에 가보니 건물은 높고 동 간격은 너무 가까워 보기만 해도 답답했다. 마치 독일의 히틀러나 소련의 스탈린 독재 시절 등장했던 권위주의 건축의 귀환처럼 보여 무섭기까지 하다.
종합 예술인 건축은 절대적 기준보다는 주관이 훨씬 더 개입되긴 하지만 사회적 공감대는 생기게 마련이다.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러나 외관만 보지 않는다. 내부 공간의 배치와 신기술의 도입 여부가 때로는 미감보다 더 크게 인기를 좌우한다. 요즘 아파트마다 평면의 배치가 놀랍고 첨단 기술 도입의 속도는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다. 밖에서 보기에 무서울 만큼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느낌을 주는 고층 아파트가 이렇게 계속 인기인 걸 보면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그 지점에서 높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걸로 아파트는 할 일을 다 한 걸까. 얼마 전 부산에 다녀왔다. 어느 전철역에서 나오니 바로 앞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담장이 가로 막고 있다. 내가 갈 곳은 그 담장 너머. 직진은 불가하니 담장을 따라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내가 느낀 불편함은 단지 직진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돌아서 가는 것 만은 아니다. 그 아파트 단지로 인해 공적 공간이 줄어든 게 더 큰 문제다. 전철역에서 나와 직진할 수 있는 공적 공간 골목을 아파트가 사유화 하는 바람에 아파트 밖에 있는 사람이 설 자리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아파트 단지는 개인의 사유 재산이 모여 만든 사적 공간이다. 하지만 도시의 경관에 영향을 미치고 공적 공간을 흡수한다는 점에서 보자면 완전한 사적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건축 관련법과 규제는 이미 이런 부분을 인정하여 반영하고 있다. 아파트 안에 인도를 내고 녹지 공간을 개방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스럽지는 않다. 아파트가 사적 재산이지만 공공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그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도시 경관은 물론 공적 공간에 대한 아파트의 배려는 여전히 부족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도를 낮추고 아파트 동 간격을 넓히자고 하면 당장 손해로 이어지니 사회 전체적으로 호응을 이끌어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소란스럽기만 하고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된다.
해법이 있다. 법과 규제 대신 실력 있는 건축가와 조경가가 손을 잡고 도시 경관에 각별히 공들인 아파트를 건축하면 된다. 이들이 공적 공간에 대한 개념을 장착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들이 진정한 의미의 아름다운 아파트를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도시 경관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 시민들이 공감한다면 이 삭막한 도시는 빠른 속도로 변화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보는 우리도 즐겁고, 후손들에게는 잘 꾸며 놓은 도시 경관을 물려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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