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닷컴 버블(IT 버블)’ 논란은 시작됐다. 탐욕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은 2001년 시장의 공포를 못 이기고 무너졌다. 당시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벤처기업 육성책을 쏟아냈다. ‘혁신’을 표방한 IT 기업들에 투자가 집중됐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1998년 한국 최초로 선보였던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는 다음커뮤니케이션에 24억을 투자해 1000억원을 벌어들이며 신화를 썼다. 현대증권(현 KB증권)은 ‘바이코리아 펀드’를 만들어 애국 마케팅에 나서며 거대한 테마주를 만들고 버블을 키워갔다. 시장은 기대감 일색이었지만 IT 업계는 인프라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다.
당시 인터넷망은 56k 모뎀 위주로 형성돼 있었다.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는 혁신을 더디게 했다. 반복되는 적자로 인해 투자자들이 의구심을 갖고 버블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한때 ‘대박’이었던 바이코리아 펀드는 1999년 수익률 100%에서 2000년 초 -77%의 손실을 기록했고 투자자들 상당수는 파산했다. 상황이 이런데 일부 벤처기업들은 버블 연장을 위해 정치권 로비에 나섰다. 결국 윤태식 게이트(패스21), 진승현 게이트(MCI코리아)가 불거지며 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책을 접고 대기업 보호 쪽으로 정책의 핵심축을 옮겨야 했다.
2022년은 1999년과 그대로 닮아 있다. 밀레니엄은 포스트 코로나로, 인터넷은 메타버스(확장가상세계)와 NFT(대체불가능토큰)로 바뀌었을 뿐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쉴러는 IT 버블 붕괴를 예견한 저서 ‘비이성적 과열’에서 "새로운 시대라는 수식어가 붙은 혁신적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과거의 혁신적 기술과 비교해 봐야 한다"며 "기업과 언론의 ‘새로운 시대’라는 용어는 호황이 증폭되는 피드백 과정의 일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쉴러의 이 같은 지적은 현재 상황과도 꼭 맞아 떨어진다. 인프라가 부족하다. 메타버스의 경우 월드와이드웹(WWW)처럼 규격화된 표준이 없어 기업들마다 단편화된 서비스를 내놓아 피로도와 실망감만 높이고 있다. NFT의 경우 디지털 세상에서 고유한 가치를 가진 자산이라는 점은 동의를 얻었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 못해 가치 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과거 IT 버블을 이겨낸 애플,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는 글로벌 플랫폼을 장악하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네이버, 카카오(다음), 넥슨 등이 살아남았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를 동반한다. 다만 시행착오를 줄인다면 더 많은 기업이 살아남고 가까운 미래에 올 메타버스, NFT 시대를 이끌 주역을 만들 수 있다.
인수위원들이 들으면 섭섭할 만한 얘기지만 최근 윤석열 당선인의 인수위에 ICT 전문가가 없다는 우려를 종종 듣는다. 당선 이후 지금까지 인수위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는 메타버스 기술 혁신을 위한 특별법 제정, NFT 활성화를 위한 금융체계 개편, 메타버스 유관 산업 10만 인력 양성 등 과거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인터넷이 AI로 바뀌고 AI가 다시 메타버스와 NFT로 바뀌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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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내다보고 인프라 확충에 투자할 선구안이 없다. 이대로라면 버블 붕괴 이후 오랜 부작용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현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인수위 합류가 꼭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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