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휠체어 설비 없으면 차별"…8년 만의 성과에도 '버스 배리어프리'는 먼 길
대법원 "교통 사업자, 휠체어 탑승 설비 제공할 의무 있다"
'차별구제 범위 제한'·'시외 이동권 미보장'엔 아쉬움 남아
"원고가 탑승할 노선 위주로 설치하라니 명백한 차별"
현 교통체계서 '장애인 시외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
장애인단체 "이번 판결로 장애인 이동권 실현은 또다시 후퇴" 비판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시내·고속버스에 휠체어 탑승 설비를 놓지 않은 것이 '차별 행위'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장애인 이동권 논의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장애인단체는 이번 판결이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시외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소송 제기 8년 만에 얻어낸 성과지만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갈 길은 먼 상황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A씨 등 장애인 3명이 대한민국과 서울시, 경기도, 버스회사 2곳을 상대로 낸 차별구제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재판부는 "교통 사업자에게는 버스에 휠체어 탑승 설비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며 "누구든지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에 이르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차별금지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법원은 '비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인'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며 "구체적 권리 또는 법률관계에 관한 분쟁의 존재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요구해 장애인이 무익한 노력을 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소송당사자로 차별구제 범위를 제한했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판결'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원고들이 탑승할 가능성이 있는 노선 위주로 휠체어 탑승 설비를 설치하라는 제한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이에 장애인단체는 "비장애인은 언제든 누릴 수 있는 이동의 자유를, 장애인은 '향후 탑승할 노선'에 한해서만 보장하라는 대법원의 판결 자체가 명백한 차별"이라고 비판한다.
또 장애인들의 시외이동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지 않았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지난달 22일 낸 성명문에 따르면 시외·고속버스의 경우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 가능한 차량은 지난해 기준 7대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교통약자법 개정안마저도 저상버스 의무 도입은 시내버스와 마을버스에 한정됐다. 이번 판결을 두고 장애인단체에서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동은 또다시 기약 없이 유보됐다"고 호소하는 이유다.
교통약자를 위한 장애인콜택시의 경우 지자체를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타 지역으로의 이동이 불가하다. KTX 등 철도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철도가 닿지 않는 지역이 많은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장애인들의 시외 이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장애인단체의 주장이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법에서) 장애인 150명당 1대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는데, 택시 운전 기사들의 근로시간 문제 등으로 실제로는 이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휠체어 탑승 설비 미제공에 정부 책임이 없다고 본 대법원을 비판했다. 재판부는 버스회사들이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도·감독 소홀이 그 자체로 차별행위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김 사무국장은 "장애인의, 국민의 권리와 관련해서는 국가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재정 확보, 지원책 마련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 개별 회사에 모든 책임과 부담을 지우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권리를 방기하는 행위"라며 "각 (버스) 회사도 차별을 해결할 의무가 있지만 (이들은) 본인들의 이익, 수익구조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가가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동권 등 장애인 권리 보장에 대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권리 예산 보장 등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였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14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이 마련된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인수위를 통해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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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장애인 권리가 권리답게 보장되지 않은 핵심 문제는 기획재정부가 권리예산을 반영하지 않은 차별"이라며 "선거기간 발표된 윤 당선인의 장애인 정책 공약은 기존 장애인 정책에서 퇴행하거나 답습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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