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 영상물 압수제도 개선·피해자 주소 관할 신설… 법무부에 권고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법무부가 무한 복제되거나 재유포 될 위험이 높은 디지털성범죄 피해 영상물에 대한 압수 제도 개선을 검토한다. 또 압수 영장 청구 등 수사 단계에서 피해자의 주소나 거소를 관할하는 법원이 영장을 발부할 수 있도록 토지관할을 인정하는 법 개정이 추진된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17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디지털성범죄 피해 영상물 압수 제도 개선' 방안을 심의·의결하고 일곱 번째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날 권고된 방안은 ▲성폭력처벌법에 '잘라내기 방식'의 압수수색 명시 ▲형사소송법에 압수 전 보전명령제도 도입 ▲피해자 주소·거소·현재지의 토지관할을 기준지 인정 ▲유럽평의회 사이버범죄협약 가입 등 모두 4가지다.
사본 취득 후 원본 삭제하는 '잘라내기 방식' 압수 방법 성폭력처벌법 명시 권고
먼저 위원회는 디지털성범죄 피해 영상물에 관한 압수 방법으로 '전자파일의 사본을 취득하고 파일 원본을 삭제'하는 방식(일명 '잘라내기 방식')을 성폭력처벌법에 명시할 것을 권고했다.
전자파일 형태로 존재하는 디지털성범죄 피해 영상물은 무한 복제될 수 있고, 원본 및 모든 사본이 삭제되지 않는 한 언제든지 재유포 될 수 있는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에 기존의 형법이나 형사소송법상 압수수색 방법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형법 제48조(몰수의 대상과 추징) 3항은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의 일부가 몰수의 대상이 된 경우 그 부분을 폐기하도록 정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제106조(압수) 3항은 '법원은 압수의 목적물이 컴퓨터용디스크, 그 밖에 이와 비슷한 정보저장매체인 경우에는 기억된 정보의 범위를 정하여 출력하거나 복제하여 제출받아야 한다. 다만, 범위를 정하여 출력 또는 복제하는 방법이 불가능하거나 압수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정보저장매체등을 압수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 같은 현행법 조항에 따라서는 웹하드나 클라우드, 이메일, 메신저와 같이 제3자인 전기통신사업자 소유 정보저장매체에 저장된 디지털성범죄 피해 영상물을 압수하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랐다.
전기통신사업자의 정보저장매체에는 범죄 행위와 관련 없는 개인 정보도 저장돼 있는 데다가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보저장매체를 압수할 수 없고, 전기통신사업자나 수사 대상자에게 정보 삭제를 강제할 명확한 근거 규정도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실무상 수사기관이 전기통신사업자의 협조를 받아 해당 데이터에 대한 출력·복사 또는 하드카피(hard copy), 이미징(imaging) 방식으로 사본을 압수하는 방식으로 압수가 이뤄져 왔다.
'n번방 사건' 이후 실무상 형사소송법 제120조(집행과 필요한 처분)가 규정한 '압수물에 대한 필요한 처분'의 하나로 원본 삭제 조치를 함으로써 피압수자의 점유를 배제할 수 있게 됐지만, 피압수자가 아닌 제3자의 동시 공유·점유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법무부는 전했다.
가령 정보저장매체를 압수하더라도 클라우드에 복제본이 있는 경우 피압수자와 수사기관 및 제3자의 동시 공유·점유가 가능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피해 영상물 보전 및 접근 차단 명령제도 도입 권고… 형사소송법 개정 필요
위원회는 또 디지털성범죄 피해 영상물과 관련해 압수 전 단계로 수사기관이 피해 영상물이 유포 또는 저장돼 있는 인터넷 플랫폼 운영자에게 해당 영상물을 보전하도록 명하는 보전명령제도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현행법상 압수영장을 발부받기 전까지 압수 대상을 보전할 수 있도록 명령하는 제도가 인정되지 않는다. 형사소송법상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는 예외가 인정되긴 하지만, 피의자를 체포 또는 구속하는 경우이거나 범행 중 또는 범행 직후 범죄 장소에서 긴급을 요하는 경우로 제한돼 있다.
수사기관이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포되고 있는 피해 영상물을 발견하더라도 영장을 발부받지 않는 한 적극적으로 압수하기 어렵기 때문에 압수영장을 발부받는 동안 피해 영상물은 광범위하게 유포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수사기관이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포되고 있는 피해 영상물을 발견한 경우, 피해 영상물의 소지자 또는 관리자인 전기 통신사업자에게 피해 영상물이 소유자에 의해 삭제되지 않도록 피해 영상물을 보전하도록 하는 동시에 추가 유포되지 않도록 피해 영상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도록 명령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유럽평의회 사이버범죄 협약'은 '컴퓨터 데이터 긴급보전명령제도'를 두고 있고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노르웨이, 핀란드 등 국가가 이 같은 보전명령제도를 국내법으로 이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보전명령제도를 도입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몇 차례 발의됐지만 '전기통신서비스 사업자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지울 수 있고, 수사기관의 남용 가능성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등 이유로 법원행정처가 반대 입장을 표명해 번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지난해 2월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거나 전자정보 확보를 위하여 긴급한 경우에는 해당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검증의 긴급보전 조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전자정보 긴급보전' 제도를 신설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피해자 주소·거소·현재지 토지관할 기준지로 인정
위원회는 또 디지털성범죄 수사단계에서 법원이 발부하는 영장이나 허가가 필요한 사항과 관련해, 피해자의 주소, 거소 또는 현재지도 법원의 토지관할 기준지로 인정하는 특별 규정을 성폭력처벌법에 신설할 것을 권고했다.
현행법상 수사 단계에서 영장 발부 담당 법원을 결정하는 기준으로서의 토지관할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 때문에 재판을 담당할 법원을 결정하는 기준을 정한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수사 단계에서의 영장 발부 담당 법원이 정해지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4조(토지관할) 1항은 '토지관할은 범죄지, 피고인의 주소, 거소 또는 현재지로 한다'고 정하고 있어 피해자의 주소지 등은 전혀 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더해 '각급 검찰청과 지청의 관할구역은 각급 법원과 지방법원 지원의 관할구역에 따른다'는 검찰청법 제3조(검찰청의 설치와 관할구역) 4항과 '검사는 사건이 그 소속검찰청에 대응한 법원의 관할에 속하지 아니한 때에는 사건을 서류와 증거물과 함께 관할법원에 대응한 검찰청검사에게 송치하여야 한다'고 정한 형사소송법 제256조(타관송치)에 따라 피해자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검찰청에서 같은 관할의 법원에 압수 영장을 청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실무에서는 디지털성범죄 수사 과정에서 토지관할 위반을 이유로 영장 신청이 기각돼 수사가 지체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법무부는 전했다.
유럽평의회 사이버범죄협약 가입 권고… 국제 형사사법 공조 강화
마지막으로 위원회는 '유럽평의회 사이버범죄협약'에 신속히 가입해 디지털성범죄 수사에서의 국제 사법공조가 신속화·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최근 해외 서버를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피해 영상물의 유포가 디지털성범죄의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 조치다.
사이버 범죄 관련 국가간 형사사법공조의 신속화·효율화를 위해 컴퓨터 데이터에 대한 초국경적 접근 등을 규율하고 있는 '유럽평의회 사이버범죄협약'은 올해 1월 기준 유럽평의회 회원국 46개국 포함 모두 66개 국가가 체결한 상태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가입하지 않고 있다.
해당 협약에는 협약당사국이 범죄화해야 할 사이버 범죄행위의 종류가 열거돼 있고, 사이버 범죄 수사방법으로 긴급보전명령, 정보제출명령, 사이버 범죄를 위한 압수·수색 방법 등이 규정돼 있다.
특히 협약은 협약을 체결한 다른 국가에 가입자 정보 등에 대한 제출명령을 할 수 있도록 정한 것은 물론, 일정한 요건 하에 정보제출명령이 사법공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접 외국의 인터넷서비스 제공자에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또 사이버 범죄를 위한 압수·수색에 있어서 압수·수색 대상 컴퓨터 시스템과 연결돼 있는 자국 내 컴퓨터 시스템으로의 압수·수색을 허용하고, 사법공조를 통한 외국 소재 시스템에로의 접근을 규정하고 있다.
위원회는 이 같은 일련의 조치가 이뤄지면 ▲디지털성범죄의 특성을 고려한 압수 방법 및 수사 단계에서의 토지관할 특례 규정 마련을 통한 신속한 수사 및 피해 영상물의 재유포 방지 ▲보전명령을 통해 증거물인 피해 영상물을 보전하는 동시에 몰수 대상에 대한 피의자 등의 접근을 차단해, 증거 확보 및 재유포 방지로 피해자 보호 ▲신속하고 효율적인 국가간 사법공조가 가능한 법적 기반 마련 등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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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성범죄에 대한 형사사법 전반적인 대응 체계를 점검,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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