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뮤지컬 '렌트'는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두 작품은 정확히 100년의 시차를 두고 초연했다. '라 보엠'은 1896년 이탈리아에서, 렌트는 1996년 미국에서 초연했다. 렌트를 만든 조나단 라슨은 19세기 말 작품을 빌려 20세기 말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미미와 로저(로돌프)의 만남= 렌트에서 미미가 로저를 만나는 장면은 흥미롭다. 라슨이 라 보엠을 가장 적극적으로 차용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렌트에서 미미는 불을 얻기 위해 불 꺼진 초를 들고 로저의 방을 찾는다. 그리고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보인다. 라 보엠에서도 미미는 불을 얻기 위해 가난한 시인 로돌프의 방을 찾고 둘은 첫 눈에 서로에게 반한다.

결정적인 차이는 미미가 로저의 방에 마약 봉지를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라 보엠에서 미미가 로돌프의 방에서는 떨어뜨리는 물건은 자기 방 열쇠다. 로돌프와 미미는 어둠 속에서 미미의 방 열쇠를 찾는다. 바닥을 더듬거리던 중 서로의 손이 닿는다. 이 때 로돌프가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가 '그대의 찬 손'이다. 로돌프는 '그대의 찬 손'을 부르며 자신을 미미에게 소개한다. 자신은 시를 쓰고 있으며 돈은 없지만 마음만은 부자인 사람이라고 노래한다. 미미가 답가로 부르는 아리아가 '내 이름은 미미'다. 자신은 수를 놓는 사람이며 자신의 진짜 이름은 루치아인데 사람들이 그냥 미미라고 부른다며 이유는 모른다고 노래한다. 왜 미미로 불리는지 이유는 라 보엠에서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데 라슨은 이 아리아 때문인지 렌트에서 유일하게 미미만 원작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다.


렌트에서 미미가 떨어뜨린 마약은 탐닉의 대상이다. 렌트의 인물들은 모두 탐닉에 빠진 이들이다. 미미와 같은 마약 중독자이거나 사랑과 성에 탐닉하는 동성애자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들과 결이 다른 탐닉을 추구하는 유일한 인물이 베니다. 베니는 돈에 탐닉하는 인물이다. 다른 모든 인물들에게 있어 배척의 대상이다. 미미가 마약을 떨어뜨려 로저와의 감정을 더하는 것은 라슨이 집 열쇠로 상징되는 돈 혹은 부에 대한 거부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혹은 집은 어차피 렌트의 인물들이 소유하기는 어려운 대상이라는 의미로도 보인다.

뮤지컬 '렌트' 공연 장면. 로저 역 장지후(왼쪽)와 미미 역 김수하  [사진=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렌트' 공연 장면. 로저 역 장지후(왼쪽)와 미미 역 김수하 [사진= 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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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서 '렌트'= 제목 '렌트'는 경제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용어다. 경제학이 태동한 18세기만 해도 렌트는 단순히 토지 임대료라는 '지대(地代)'의 의미였다. 땅을 보유하고 있음으로 얻게 되는 불로소득을 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렌트가 가진 함의는 복잡해졌다. 오늘날에는 독점, 착취 등을 통해 공정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의 의미가 더해졌다. '지대 추구(rent seeking)'는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렌트에서 건물주인 베니가 세입자인 로저에게 과도한 집세를 물려 이익을 취하려는 행위는 넓은 의미에서 지대 추구 행위로 볼 수 있다. 게다가 베니는 자신이 노력해 건물을 얻은 것이 아니라 부잣집 딸과 결혼으로 건물을 얻었다. 불로소득으로 얻은 건물로 로저에게 착취를 가하고 있는 셈이다.


지대 추구가 공정한 경쟁 하에서 이뤄진다면 경제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렌트에서 베니의 행동은 착취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극의 시작 부분에서 로저와 룸메이트 마크는 넘버 '렌트(rent)'를 노래한다. "갚을 수가 없어 갚을 수가 없어 뭘 어떻게 갚아 집세를"이라고. 로저와 마크는 지난해 집세는 물론 올해 집세도, 내년 집세도 내지 않을 것이라고 외친다.


극 중 거리의 행위예술가 모린이 넘버 '오버 더 문(Over The Moon)'을 부르며 선보이는 공연도 지대 추구 행위를 비판하는 은유다. 모린의 공연 중 젖을 짤 수 없게 된 젓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누군가가 젖소를 독점해 우유 생산을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뮤지컬 '렌트' 공연 장면. 모린 역 민경아 [사진=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렌트' 공연 장면. 모린 역 민경아 [사진= 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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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빌리지의 가난한 예술가들= 렌트의 배경은 1980년대 이스트빌리지다. 전시 부문에서는 이스트빌리지가 꾸준히 다뤄진다. 지난해 초가 압권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이스트빌리지 뉴욕', 롯데뮤지엄의 '케니 샤프, 슈퍼팝 유니버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키스 해링: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서울숲 아트센터의 '반항의 거리: 뉴욕' 전시가 모두 뉴욕 이스트빌리지를 배경으로 한 전시였다. 오는 10월8일 롯데뮤지엄에서 개막하는 '장 미쉘 바스키아ㆍ거리, 영웅, 예술' 역시 이스트빌리지를 배경으로 한다. 바스키아는 키스 해링, 케니 샤프 등과 함께 이스트빌리지를 대표하는 예술가다.


이스트빌리지의 예술가들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1981~1989년 재임)에 상당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레이건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며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당시 규제 완화로 뉴욕 지역 부동산 개발 붐이 이뤄지면서 높아진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가난한 자들은 계속해서 외곽으로 밀려났다. 외곽으로 쫓겨난 뉴욕의 가난한 예술가들은 렌트의 주인공들처럼 이스트빌리지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철거 건물 등에서 예술혼을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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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해링은 1980년 '경찰 영웅에게 살해당한 레이건'이라는 콜라주 작품을 제작했는데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 '이스트빌리지 뉴욕'에서 전시됐다. 당시 전시의 부제가 '취약하고 극단적인'이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뉴욕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선보인 파격적인 예술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라슨도 파격적인 소재와 강렬한 록음악을 이용해 똘끼 가득한 인물들의 쌩쇼를 만들어낸 것이다.


렌트를 보다 보면 라 보엠의 로돌프가 부르는 아리아 '그대의 찬 손' 중 "돈은 없지만 마음만은 부자"라는 노랫말은 웬지 공허해 보인다. 그래서 렌트의 주인공들은 1년을 52만5600분으로 계산하면서 그렇게 사랑을 외치는 것일까.

뮤지컬 '렌트' 공연 장면  [사진=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렌트' 공연 장면 [사진= 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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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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