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산책] 이글거리는 초록 에너지 '生! 命! 力!'
금호미술관 김보희 초대전 '투워즈'…대표작 17점 外 미공개작 36점도 공개
6년만에 다시 선보이는 대작 '그날들'…낮과 밤 공존하는 환상적 풍광 담아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독일의 낭만주의 성향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1810년 '색채론'을 썼다. 그는 벽지 바르기나 거실 내부 장식, 특히 침실 꾸미기에 녹색을 권했다. 녹색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금호미술관 3층 전시실은 초록이 전하는 에너지로 충만하다. 전시실 2개 벽면을 'ㄱ' 자 형태로 가득 채운 작품은 김보희 화백의 '그날들(The Days)'이다. 초록의 압도적인 에너지로 가득하다. 가로 14.58m, 세로 3.9m의 거대한 화면에 짙고 옅은 초록의 싱그러운 잎사귀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초록은 생명을 상징하는 색. 그림 자체가 숨을 쉬는 듯하다. 힘들고 지친 이들도 이 그림 앞에서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김 화백은 100호 크기(1.3m×1.62m) 캔버스 27개를 가로 9개, 세로 3개로 이어붙였다. 햇수로 4년(2011~2014) 동안 그렸다. '그날들'은 2014년 10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1주년 기념 전시 '정원'전에서 서울관 로비를 장식한 바 있다. 이후 2018년 제주도 김창열미술관에서 한 번 공개됐을 뿐이다. 서울에서는 거의 6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금호미술관은 7개 전시실 모두 김 화백의 작품으로 채운 '투워즈(Towards)' 전시를 다음 달 12일까지 개최한다. 그의 미공개작 36점과 드로잉 2점, '그날들'을 포함한 그의 대표작 17점이 전시된다.
김 화백은 1981년 제30회 국전 특선과 1982년·1983년 제1회·제2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을, 1992년 제2회 월전미술상을 받았다. 1980년대 인물과 정물 그리고 풍경 등 비교적 다양한 소재를 다뤘다. 1990년께부터는 자연 소재의 좀 더 견고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금호미술관은 김보희 화백에 대해 사실적으로 치밀하게 묘사한 대상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추상적 배경을 한 화면에 조화롭게 구성해 구상 풍경 회화의 지평을 넓혀왔다고 설명했다.
'그날들'은 푸른 잎들을 세밀하게 그려 생명력을 표현하는 한편 배경은 낮과 밤이 공존하는 환상적인 풍광을 담았다. 그림 왼쪽 끝에는 밝고 환한 낮의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러나 오른쪽에는 짙푸른 어둠 사이로 조각달이 떠 있다. 그 속에 앵무새, 거북이, 원숭이 등도 있다. 김 화백은 "하나님이 천지창조할 때 여섯번째 날에 인간을 만들었는데 인간이 생기고 난 다음에 죄도 생기고, 자연도 지저분해졌다. 그래서 인간을 빼고 대신 원숭이 하나 집어넣었다고 했다."
1층 전시실에 자리 잡은 '테라스(The Terrace)'도 가로 5.20m, 세로 3.24m의 대작이다. 캔버스 8개를 연결했다. 지난해 그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한 작품으로 김 화백의 제주도 집 정원 풍경이 담겼다.
김 화백은 2005년부터 제주도에 거처를 마련해 작업하고 있다. 주중에는 서울에서 강의하고 주말이면 제주도로 내려가 작업했다. 2017년 이화여대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뒤부터는 제주도에서 그림 그리기에 더 몰두하고 있다.
김 화백은 "작업량이 확실히 늘었다"며 "서울에서보다 하루가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작품 중 33점이 지난해와 올해 제작한 새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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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3층 바깥 전시장은 바다 풍경 시리즈 작품들로 채워졌다. 한가운데 수평선 중심으로 아래·위에 푸른 바다와 하늘이 표현돼 추상화 같은 느낌을 준다. 전시실 2층은 김 화백이 날마다 산책을 다니는 제주도 중문의 풍경을 담은 그림들로 채워졌다.
지하 전시실에는 씨앗 시리즈 작품들이 걸려 있다. 그중에서도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중문의 여미지식물원에 가끔 간다. 꽃이 져서 꼬불꼬불하게 머리카락처럼 내렸는데 그것도 아름답더라. 나는 늙어서 주름살이 생기고 속상했는데, 늙은 것도 아름다움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화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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