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백종민 특파원] 5월25일은 미국의 메모리얼데이(현충일)다. 그 출발점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북군 출신의 존 로건 장군이 전사한 북군 장병 무덤에 꽃을 장식하라고 포고령을 내린 데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다. 최근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시작됐다는 주장이 관심을 끌었다. 자유로운 신분을 획득한 흑인들이 모여 남북전쟁에서 노예해방을 위해 싸운 연방군(북군) 전사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전쟁 종식을 기념한 데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미국인들은 이날 조기를 게양하고 기념 행진도 곳곳에서 벌인다. 하지만 이런 엄숙함은 일부일 뿐, 메모리얼데이의 진면목은 따로 있다. 그 이면은 여름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연휴임과 동시에 대대적 세일행사로 대표된다. 우리에겐 블랙프라이데이가 미국의 쇼핑 시즌으로 알려져 있지만 메모리얼데이 세일도 그에 못잖다. 야외활동에 적격인 '계절의 여왕' 5월에 공휴일이 있는 데다 졸업 시즌이 겹치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젊은이들은 나이트클럽과 해변으로 몰려가고 가족들도 여행을 떠나기에 딱 좋은 시절이다. 현충일에는 경건한 마음으로 유흥업소 영업도 자제하는 풍경에 익숙한 우리에겐 색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올해 메모리얼데이는 이런 정상적 일상이 사라진 이례적 해로 역사와 구전을 통해 이어질 게 분명하다.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후 처음 맞이한 공휴일이라는 점에서 과거 메모리얼데이와는 전혀 다르다.
우선 코로나19로 10만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4000만명에 육박하는 실업자가 발생한 현실은 2020년 메모리얼데이를 사회 갈등이 극대화된 날로 역사에 기록하게 하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현재 미국의 모습은 메모리얼데이의 계기가 된 남북전쟁 당시만큼이나 분열이 가득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연방정부와 각 주, 특히 민주당 출신 주지사 간의 갈등은 남북전쟁 당시를 연상케 할 정도다. 코로나19 피해가 집중된 뉴욕 등 민주당 계열 주지사들이 포진한 미 북부와 코로나19 피해가 덜한 상당수 남부 주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피해가 심각한 주에서는 경제활동 재개가 여전히 조심스럽다. 주민들은 이제 공공장소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게 당연하다. 학교는 방학을 없애고 1년 내내 온라인 수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다. 반면 조지아, 플로리다 등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남부 주에서는 수영장 파티에 몰려든 인파의 사진이 확산되며 논란을 키우고 있다.
노예해방을 두고 갈라진 남과 북이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내전에 이르게 된 아픈 상처를 기억하고 화합해야 하는 날이지만 현실은 전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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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국제적으로도 이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을 언급하며 한국을 넘어섰다며 자랑스럽게 비교한다. 그러면서도 한국이 왜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는지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반성보다는 남을 탓하는 게 지금 미국의 모습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당연한 진리를 244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에 기대하기는 너무 큰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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