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언론은 '내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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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햇병아리 기자 시절부터 정치판을 취재했다. 정당으로는 5공화국 시절 민정당이 첫 출입처였다. 당시 종합지의 여당 출입기자는 회사당 4~5명. 새벽부터 당사에 나가 발품을 팔았다. 당연히 고참보다 정보가 많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느지막이 출근한 선배들은 말진의 보고를 들으며 '다 안다'라는 표정이었다. 조금 지나고 깨달았다. 이른바 '유능한 선배'들은 전날 저녁 특정 캠프의 전략회의에 참여하거나 술자리를 갖고 대변인 논평이 그리 나온 배경까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유착하지 않으면 탁월한 정치부 기자가 될 수 없는 건가. 고민을 같이하는 신참 기자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말진기자당'이었다. 총재, 총장, 총무(지금의 원내대표) 등. 당직 호칭으로 우의를 다지며 기자 정신 발휘에 협력기로 했다. 그런 '말진당'도 결국 어느 편인지 선택해야 했다.


'1노(盧)3김(金)'의 대립이 첨예하던 시절. 상당수 정치부 기자의 이마에는 아예 분류표가 붙었다. 몇몇이 현역에서 바로 정치권으로 진출하면서 이런 시각은 더욱 굳어졌다. 옛 정치의 막내가 되고 싶어 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자실에 대못을 박고, 기자들과의 사적인 만남 자체를 막으려 한 배경이 한편으로 이해가 됐다. 민주화가 진척되고 언론 개혁 논의가 본격화됐지만 정론의 길은 여전히 험난했다. 친정부, 반정부를 넘어 기자 사회가 진보와 보수로 나뉘었다. 편집국과 보도국에선 선후배가 대립했다. 설상가상 언론사 자체가 이념에 따라 갈라졌다. 댓글 문화가 기승을 부리며 진영 논리에 갇힌 언론은 '기레기' 비난대에 올랐다.

최근 '조국 사태'를 계기로 언론 개혁 목소리가 다시 강하게 나오고 있다. 사주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편집권 독립을 확고히 하고, 기자의 정치권 진출을 제한하면 언론 풍토가 바뀔까. 오보 제재를 강화하고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확대하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공정해졌다는 평가를 받을까. 쉽지 않다고 본다. 가짜 뉴스 엄단,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짜 뉴스 판단 기준이 정파 간 시각에 따라 다른 게 문제다. 정치판 취재, 보도 현장에서 엄정한 시시비비(是是非非)가 가능한가부터 따져보고 대안을 찾는 게 현실적이다.


이제 정언(政言) 유착 수준은 확실히 낮아졌다. 그런데도 언론이 정파적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기자라는 직업군의 근본 속성 때문이다. 개인별 정치 성향이 있고, 소속된 회사의 지향점이 있다. 누구든 꼬집지 않으면 주목받기 어렵다. 특종과 속보 경쟁, 자극적 보도를 향한 욕구가 강하다. 원초적인 정파성과 비판 욕망을 무시하고 언론 개혁을 말해봐야 백년하청이다. 역대 정권이 언론 개혁에 실패한 이유는 단순하다. '언론을 내 편으로 순치하는 게 개혁'이라는 심리가 깔려 있던 탓이다. 단언컨대 언론은 '내 편'이 아니다. '정파적 보도'는 권력의 부침에 따라 요동친다. 어떤 제도를 도입하든 언제까지나 내 편은 없다.

따라서 언론 개혁의 요체는 '본질적 당파성'을 인정하면서도 '과도한 편견'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취재, 보도를 제한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알 권리를 보장하는 선에서 일정 수준의 규제 강화는 어쩔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스스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과도한 편견'을 가지지 않은 언론사를 지원하는 제도 마련이 중요하다. 언론사는 '팩트' 앞에서는 정파성을 양보하는 분별력 있는 정통 기자를 키워야 한다. 영국의 왕립언론위원회 보고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정부 대토론회 보고서를 참고하되 우리의 '뜨거운 언론 환경'을 감안한 대책이 나와야 할 때다. 매체 난립의 시대를 맞아 당장 언론이 답답하고 야속할지라도 긴 호흡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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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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