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발상의 전환이 혁신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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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서부에는 리모주(Limoges)라는 도시가 있다. 인근에 선사 시대 동굴벽화가 많이 남아 있고, 깊은 산속에 있지만 이 분지도시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지금도 시내 곳곳에는 13세기에 만들어진 대성당과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 이 도시의 전성기를 짐작게 한다. 이곳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도자기 때문이었다. 리모주에 처음 도자기가 들어온 것은 경제학자 안 로베르 자크 튀르고(1727~1781)의 선견지명 덕분이었다. 그는 중농주의자였지만 농업의 한계를 체감하고 있었고 지속적인 지역 발전을 위해 농업을 대체할 도자기산업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도자기산업이 도입되었으나 고령토가 없어 점토에 석고, 골회 등 다른 재료를 추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1768년 인근에서 고령토(kaolin)가 발견되면서 리모주의 도자기는 다른 나라에 비해 경쟁력을 가지게 됐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리모주에는 수십 개의 도자기 공장이 들어섰고, 프랑스 전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명산지로 우뚝 섰다. 다양한 무늬와 색채를 가지고 있으며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된 리모주 도자기는 중국 도자기보다 값싸고 품질이 우수해 미국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하지만 20세기가 되면서 플라스틱 등 다른 재료가 속속 등장해 자기그릇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자 세계적으로 도자기산업은 긴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리모주의 도자기 역시 그 명성을 차츰 잃어갔다.

세계적으로 도자기산업은 위기였지만 일부에서는 도자기와 같은 원리로 만들어지는 세라믹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세라믹 소재는 여러 금속 원료가 산소, 탄소, 질소 등과 결합하여 다양한 성질을 가진 물질로 변한다. 이 소재를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고 열을 가해 강도가 생기도록 한 것이 바로 세라믹 제품이다. 리모주 도자기 생산업체들도 고열에 강하고 전기를 전달하지 않는 비전도성을 가진 세라믹에 주목했다. 특히 일찍부터 치과용 임플란트에 사용된 세라믹을 의료용으로 발전시켜 치아는 물론 고관절, 두개골, 무릎 보호대 등 다양한 의료용 제품을 전 세계에 공급했다.


세라믹 생산 과정은 도자기 생산 과정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그들은 응용 분야가 다양한 세라믹을 산업화함으로써 옛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리모주에서는 2005년 유럽세라믹연구소(PEC)를 설립하고 올해 10월까지 30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140개 회원사가 참여해 세라믹의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지금까지 이 연구소를 통해 개발된 제품은 60억유로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최근 세라믹은 정제해 가공한 파인(fine) 세라믹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는 생활용품에서 벗어나 전자, 전기, 광학, 건물, 우주, 에너지산업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쇠퇴하는 도자기산업에서 다양한 분야로 각광받는 세라믹 산업으로 전환을 이루게 된 핵심은 비금속 재료를 고온에서 만들어내는 도자기산업의 원리가 금속 재료의 결합으로 만들어내는 세라믹과 동일하다는 것에 주목한 발상의 전환에 있다.


리모주에서 두 세기에 걸쳐 명성과 부를 얻었던 도자기 가마(Four des Casseaux)는 이제 기념박물관으로 변해 남아 있지만 인근에서는 수많은 튀르고의 후손들이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 전자 세라믹(Electroceramic)을 중심으로 세라믹의 혁신을 이루어내고 있다. 경제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혁신을 외치는 현재 상황에서 혁신이라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찾기 어려운 것만은 아닐 수 있다. 그렇다. 혁신은 작은 발상의 전환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리모주 도자기는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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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 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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