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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 리뷰] 벽화에서 튀어나온 안무, 무용의 고정관념을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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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렐조카주 발레 '프레스코화' 내한…中청나라 소설 '요재지이(聊齋志異)'서 모티브→

한정호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한정호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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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생인 프랑스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는 19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내한하며 당대 본인의 화제작을 한국 관객과 교감했다. 특히 2003년 '봄의 제전'과 2014년 '스노우 화이트'가 서울에 남긴 여운은 고정된 틀 안에 안무가를 집어넣어 예술 세계를 규정하려는 방만한 비평적 시선에 대해 야유했다.


프렐조카주는 차기작에서 어느 정도 일관된 흐름이 예상되는 찰나에 또 자기만의 지적 탐구를 이어가고 무용 작품에서 지적 만족을 추구하는 프랑스 파리의 부르주아 관객들과 호응했다.

지난달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 오른 프란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초연도 마찬가지였다. 음악과 움직임의 상성(相性)은 조화뿐 아니라 뒤틀림을 통해서도 또 다른 출구가 열린다는 노장의 혜안이 무대에 드리웠다.


다음 달 LG아트센터(1~3일), 부산문화회관(6일), 대전예술의전당(9~10일)에서 상연되는 '프레스코화(La Fresque)'도 어느덧 예순이 넘은 안무가가 자기 복제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 흔적을 역력히 보여준다.


미술 용어로 '프레스코'는 흔히 석회 반죽 위에 그린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미술품이나 벽화를 칭한다. 하지만 프렐조카주는 중국 청나라 시기 소설 '요재지이(聊齋志異)'의 벽화 에피소드에서 작품명을 땄다.

장자의 '호접몽'이 사물과 인간의 구별을 잊은 물아일체에 대해 다뤘다면 '프레스코'는 배경을 동양으로 달리한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다름없다. 모리스 베자르(1928~2007) 등 프랑스의 저명 안무가들이 그동안 동양 예술에서 영감을 얻은 결과들은 곧잘 오리엔탈리즘으로 결론 났다. 하지만 프렐조카주의 DNA는 태생적으로 다문화다. 알바니아계 부모 밑에서 자란 자취들이 과거작 '결혼' '봄의 제전'에 담겼듯 '프레스코화'에서도 눈요기로 이국 배경을 착취하지 않는다.


'프레스코화'는 비를 피해 동굴로 들어간 두 여행자가 은신처에서 만난 여인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매혹되는 과정이 서사 대부분을 담당한다. 여인들은 처음에 다가갈 수 없는 벽화 속의 존재였다. 하지만 그림자의 형상이라도 육체로 접촉하고픈 여행자의 욕망은 섹스로봇에 열광하는 요즘의 색정광을 투과한다. 작품 내내 당대 현실의 컨텍스트를 읽어낼 소지가 다분하다.

[사진= LG아트센터 제공 (c)Jean-Claude Carbonne]

[사진= LG아트센터 제공 (c)Jean-Claude Carbo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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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일렉트릭 듀오 에어(Air)의 멤버 니콜라 고댕의 미니멀리즘 음악이 유연하지만 강력한 파워의 여성 무용수들에게 가속 기어를 달았다. 안무가가 '헬리콥터'에서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굉음을 춤 에너지의 근원으로 삼았듯 고댕의 도취적인 음악으로 관객은 작품 속 메타포의 동굴에서 한참 허덕인다.


2000년대 중반 출간된 옥스퍼드출판의 무용사전은 프렐조카주를 "카린 바에너(1926~1999)와 머스 커닝햄(1919~2009)에게서 현대무용을 공부하고 도미니크바구에컴퍼니 등 다양한 무용단에서 활동한 프랑스 남성 무용수, 안무가이자 무용단 감독"으로 정의한다.


그 사이 프렐조카주는 가치평가를 다시 받을 만한 업적을 쌓았다. 나이가 들어도 후속 아카이브에서 동어 반복을 피하는 자세는 나이만 젊은 안무가들의 제작 방식에 경종이 되고 있다.


신선한 창작의 샘물을 퍼올리는 기반은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 자리 잡은 무용 창작 기지 '파비옹누아르(Pavillon Noir)'다. 제작 지원금 심사를 염두에 둔 짜내기식 창작이 아니라 무용수를 지켜보던 음악가들이 제시하는 힌트에서 난데없는 발전책이 도출된다.


세계 저명 대학에서 장르별 인재를 한 건물에 모아놓은 경우는 많지만 실제로 수준 높은 융합 작품이 나온 곳은 없다. 학제 사이 벽을 쌓아놓고 장르 안에서 기득권을 학생 시절부터 찾는 환경이라면 앞으로도 프렐조카주식 프로덕션의 '프레스코화'나 '겨울 나그네' 같은 퀄리티는 기대할 수 없다.


제3세계는 '프레스코화' 공연의 내용뿐 아니라 창작 방식에 더 눈떠야 한다.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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