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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tage] 담담하게 여물어가는 단단함, 연극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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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발달장애를 지닌 아들 '미켈레'가 사라진 지 3개월째. 엄마 '이자벨라'는 미켈레가 특수시설에 보내졌다는 얘기를 딸 '산드라'에게서 듣는다. 산드라는 오빠 미켈레가 있을 곳은 집이 아니라 시설이라며 자기가 오빠를 시설로 보냈다고 뒤늦게 털어놓는다. 이자벨라의 얼굴이 굳어지지만 딸을 질책하는 말은 없다. 미켈레를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 우선이다.


장면이 전환된 후 이자벨라가 특수시설 문 앞에서 멀뚱멀뚱 서 있다. 관계자가 기다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자벨라는 기다리라고 한 지 두 시간째라며 투덜댄다. 하지만 시설 관계자에게 직접적으로 불평하거나 불만을 드러내진 않는다. 그저 계속 기다릴 뿐이다. 3개월 동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랐던 아들을 바로 코앞에 둔 이자벨라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덤덤하다. 모진 삶을 견디며 오랫동안 몸에 밴 삶의 태도처럼 보인다. 시설의 특수교사 '클로디아'를 만나지만 클로디아 역시 이자벨라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말한 뒤 사라진다. 이자벨라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또 기다린다.

극단 산울림이 창단 5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초연하는 연극 '앙상블'은 억척스럽게 담담함을 고수한다. 발달장애가 있는 30대 아들, 오빠만 신경쓰는 엄마에게 화가 나 가출한 뒤 10년 만에 돌아와 자기의 결혼 소식을 알리는 딸. 여러 갈등 요소를 안고 있지만 살벌한 충돌은 벌어지지 않는다. 모진 삶 속에서 단단한 내면을 다진 엄마 이자벨라의 존재 때문이다. 이자벨라는 10년 만에 나타난 딸에게도 가볍게 뺨을 한 번 '찰싹' 때릴 뿐 감정을 조절한다. 오히려 엄마의 반응에 딸이 더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드디어 만난 아들. 하지만 클로디아는 이자벨라가 미켈레 보호권을 딸에게 양도했다며 데려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제서야 이자벨라는 산드라가 사인해달라고 들이밀었던 종이의 정체를 알게 된다. 이자벨라와 산드라 사이에 뭔가 갈등이 생길 듯하다. 그러나 극은 잠시 후 이자벨라와 미켈레가 다시 집에 평온하게 있는 모습을 비춘다. 이자벨라가 미켈레 보호권을 어떻게 다시 되찾았는지는 생략된다.

[On Stage] 담담하게 여물어가는 단단함, 연극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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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자벨라의 일상은 단단함 그 자체다. 연극 앙상블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이자벨라는 산드라의 어이없는 행동에도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10년 만에 나타난 딸에게도 가볍게 뺨을 한 번 '찰싹' 때릴 뿐 감정을 조절한다. 오히려 엄마의 반응에 딸이 더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으로 이자벨라의 태도는 답답하고 갈등을 일으키지 않기에 극은 자칫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자벨라의 담담한 태도는 결국 관객을 주저앉혀 관조하게 만든다. 이자벨라의담담한 태도는 고통과 시련으로 가득한 자신의 삶을 평범하지만 단단한 일상으로 변모시키고 극도 이자벨라의 삶처럼 조금씩 단단하게 여물어간다.

아들 미켈레도 장애를 가진 캐릭터지만 관객들이 불편하게 여기거나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제작진은 "장애를 표현하는 부분이 희화화하거나 가벼워지지 않도록 정신과 의사 등 여러 전문가의 자문 아래 신중함도 기했다"고 전했다.


앙상블은 프랑스 배우 겸 작가 파비오 마라의 작품으로 2015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 2017년 파리에서 재연됐다. 극적인 재미보다 지친 일상에서 한 번 숨돌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연극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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