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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최종수정 2019.04.22 13:38 기사입력 2019.04.2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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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 문화부 기자

박병희 문화부 기자

"밥 한 그릇 더 먹었는데요." "아, 그거는 저희가 밥을 적게 줘서 그런 거니까."


'공깃밥 추가'를 계산하지 않는 식당은 오랜만이었다. 서울 광장시장에 있는 순댓국 집. 식당의 밥 인심이 갈수록 준다 싶은 요즘, 고봉밥 한 그릇을 대접받은 기분이었다. 운수 좋은 날이었다. 취재를 하러 간 종로예술극장에서는 '내려 먹는 커피'를 한 잔 대접받았다. 넉넉한 인심을 연거푸 느끼며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인심은 넉넉했지만 종로예술극장은 사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곳이다. 연극 배우 여섯 명이 월세를 분담해 극장을 운영한다. 무명의 연극배우들이 치열한 삶을 견뎌내는 현장이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확인하고 가도 찾기가 쉽지 않다. 낡은 4층 건물 맨 위층에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가야 한다.


걸어올라가다 보면 숨이 차지만 수고를 할 만하다. 종로예술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풍성하고 아늑한 느낌을 받는다. 힘겹게 찾아오는 이들에게 편안한 시간을 선물하려는 배우들의 마음을 담은 듯하다. 종로예술극장 공간은 둘로 나뉜다. 한 쪽은 전시, 공연을 하는 공간이고 다른 쪽은 카페다. 카페 한 쪽 벽에서는 흑백 무성영화가 계속 상영되고, 카페를 둘러싼 책장에는 여러 출판사로부터 기증받은 책들이 빼곡하다. 카페, 영화, 전시, 연극까지 다양한 문화를 한 공간에 담은 것은 그만큼 배우들이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뜻이리라.


문화부 기자로서 연극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꿈을 좇으며 버텨내는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얼마 전 만난 한 연출가는 "연극은 현대 사회의 상식으로 보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식샤를 합시다'라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다. 밥을 먹는 행위가 얼마나 경건한 일인지 보여주는 이 드라마의 시즌1은 식당에 걸린 액자 속 천양희 시인의 '밥'이라는 시를 보여주며 끝났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네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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