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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냥이 지키는 캣맘ㆍ캣대디의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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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구 상봉동 '캣맘' 신미선씨
30군데 밥자리서 고양이 150마리 먹이 제공
먹이제공·주민 설득·중성화 수술까지
도시 속 길고양이와 사람 공존 꿈꿔

지역사회 문제 대두 '길고양이' 문제
전문가들 '동물 공존' 위한 인식개선 필요
꾸준한 주민설득 있어야

캣맘 신미선씨가 서울 중랑구 한 공원에서 길고양이 '설이(눈처럼 하얗다고 신씨가 붙여준 별명)'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모습.

캣맘 신미선씨가 서울 중랑구 한 공원에서 길고양이 '설이(눈처럼 하얗다고 신씨가 붙여준 별명)'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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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노태영 기자, 정동훈 기자]"안락함은 누리지 못하더라도, 굶어 죽는 생명은 없어야 한다는 게 캣맘ㆍ캣대디들의 마음 아닐까요."


서울 중랑구 상봉2동에 사는 신미선(50)씨는 4년차 '캣맘(영어로 고양이를 뜻하는 '캣'과 엄마인 '맘'의 합성어)'이다. 에어로빅 강사인 신씨는 강의가 없는 날이면 오후 2시에 집을 나서 일명 '밥자리' 서른 곳을 돈다. 밥자리는 고양이들의 사료와 쉼터를 조합해 만든 뜻이다. 구청에 협조를 얻어 공원이나 공공기관 주변에 주로 설치한다. 상가나 오피스텔 등에도 허락을 구하고 공터 주변에 나무, 종이 상자 등으로 간이 고양이 쉼터를 만들 수도 있다. 신씨가 돌보는 중랑구 일대 밥자리 한 곳당 고양이 5마리가 들러 끼니를 해결한다고 가정하면 그가 밥을 주고 돌보는 고양이들은 150마리라는 계산이 나온다.

신씨는 "고양이 한마리가 한달에 2㎏정도 사료를 먹기 때문에 한달 사료만 300㎏을 쓴다"며 "캣맘 대부분은 사비를 들여서 사료를 사고, 고양이 치료까지 돕고 있다"고 했다. 신씨 역시 한달 사료값으로만 60만원 가량을 쓴다. 다친 고양이 치료와 관리 등을 위해 매달 평균적으로 40만원 정도를 지출한다. 한달 평균 100만원 이상을 길고양이를 위해 쓰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중성화수술 지원사업이 시행되지 않는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는 20만~30만원을 호가하는 중성화 수술 비용을 사비로 내기도 한다(고양이들이 많이 울어서 밥자리 주변 주민들이 민원을 넣기 때문에 사비로 중성화수술을 시키기도 한다).


도시에 사는 '길'고양이들의 생활은 팍팍하다. 육식동물인 고양이가 삭막한 도시에서 구할 먹이는 흔치 않다. 마실 물 구하기도 어렵다. 이런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살피는 이들이 바로 길고양이 보호 활동가, 캣맘들이다. 남성들은 '캣대디'라고도 불린다. 시민단체 소속도 아니다. 누군가의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닌 자발성에 근거한 활동이다.


이들은 중성화를 지향하는 '길냥이급식소(캣맘캣대디)'와 '고양이라서다행이야' 등의 온라인 카페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각자 구역에서 캣맘 활동을 이어간다. 서울대 수의과대학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캣맘의 43%는 매달 길고양이 먹이를 위해 3만~10만원을, 23%는 10만~30만원을 지출한다. 일부 캣맘은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 단체를 만들기도 한다.

에어로빅 학원 원장이었던 신씨는 지난해 2월 '전업 캣맘'이 됐다. 8년간 운영하던 에어로빅 학원은 지난해 2월 문을 닫았고 현재는 근처 주민센터에 에어로빅 시간강사로 나서고 있다. 밥자리마다 먹이를 채우고 중성화를 위한 포획 작업도 하지만 제일 공을 들이는 것은 주민 설득이다. 그는 "먹이를 제공하면 고양이들은 음식물 쓰레기 봉투도 뒤지지 않고 동네를 어지럽히지 않는다"며 "밥자리를 만들고 중성화수술을 시키면서 동네가 깨끗해지니 구청, 주민센터가 아니라 캣맘들에게 급식소를 설치해달라고 부탁하는 주민도 생겼다"고 말했다.


캣맘 신미선씨가 서울 중랑구 한 공원에서 길고양이 '설이(눈처럼 하얗다고 신씨가 붙여준 별명)'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모습.

캣맘 신미선씨가 서울 중랑구 한 공원에서 길고양이 '설이(눈처럼 하얗다고 신씨가 붙여준 별명)'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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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을 뒤로 하고 캣맘 활동에 뛰어든 것은 고양이를 '생명'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는 "아프고 굶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면 꼭 기아를 겪고 있는 난민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 삭막한 도시에서 사람 옆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생명체는 고양이가 유일하다. 이들에 관심을 주지 않고 돌보지 않는 것은 약자를 보듬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봉사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캣맘ㆍ캣대디를 바라보는 일부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은 여전하다. 2011년부터 서울 마포구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대디 이한종(32)씨는 하루에 평균 5~10마리의 밥을 챙겨주고 있다. 먹이를 줄 때면 주변 주민들로부터 '고양이 시끄러우니 다른데로 가라', '먹이 줘서 번식하면 책임질 거냐'는 소리만 들었다. 특히 번식기에 내는 특유의 고양이 울음소리로 인한 민원이 많다.


캣맘들은 길고양이들과 같이 살기를 꿈꾼다. 이들이 중성화 수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기도 하다. 이들은 밥자리 주변에서 고양이들을 포획해 서울시의 고양이 중성화수술 사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는 길고양이 572마리를 중성화해 방사했다. 실제 길고양이 개체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서울시가 2013년부터 2년 단위로 '길고양이 서식현황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조사 결과 2013년 25만마리, 2015년 20만마리, 2017년 13만9000마리로 꾸준히 줄고 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길고양이 소음의 원인은 발정기 때 울음 소리로 중성화 수술을 하게 되면 해결이 된다"며 "무분별한 번식을 억제시켜 개체수를 안정화시키는 효과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중성화 수술의 상당부분을 캣맘이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진경 동물행동권 단체 카라 이사는 "2006~2007년 이전에는 길고양이를 그냥 죽이는 '살처분의 시대'였다"며 "너무 비과학적이고 무용한 정책이다보니까 중성화사업이 도입됐다.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정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미선씨가 길고양이들의 먹이를 제공하는 '밥자리'에는 고양이들을 구경하는 이들이 모이기도 했다. 신씨는 "고양이 밥자리를 만들어 주고 중성화수술을 시키면서 동네가 깨끗해지니 구청, 주민센터가 아니라 캣맘들에게 급식소를 설치해달라고 부탁하는 주민도 생겼다"고 말했다.

신미선씨가 길고양이들의 먹이를 제공하는 '밥자리'에는 고양이들을 구경하는 이들이 모이기도 했다. 신씨는 "고양이 밥자리를 만들어 주고 중성화수술을 시키면서 동네가 깨끗해지니 구청, 주민센터가 아니라 캣맘들에게 급식소를 설치해달라고 부탁하는 주민도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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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문제 '캣 포비아'=길고양이 문제를 둘러싼 주민 갈등은 끊임 없이 반복되고 있다. 길고양이 혐오가 범죄로 이어진 사례도 다수다.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길고양이 서식지에 쥐약을 살포하는 등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강원도 춘천시에서는 길고양이들이 연쇄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5년째 이모(73)씨 부부가 돌보며 정을 주던 고양이들이었다. 지난해 7월 한 고양이가 소양2교 인근 종이박스에 담겨 죽은 채로 발견됐다. 머리를 둔기에 맞았고 양쪽 눈은 훼손돼 있었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또 다른 고양이는 다리가 부러진 채 발견됐다. 당시 치료를 맡은 수의사는 '구타당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냈다. 다른 두 마리는 이들 부부 앞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행방이 묘연했다. 부부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별다른 혐의를 찾지 못하겠따며 수사를 종결했다. 범인은 잡지 못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캣맘인 이웃 주민을 마구 때려 중상을 입힌 3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상해 혐의로 구속된 A(39)씨는 인천 계양구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이웃 주민인 B(60)씨를 바닥에 넘어뜨리고 주먹으로 때려 다치게 한혐의를 받았다. B씨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얼굴에 상처를 입는 등 크게 다쳤다. A씨는 B씨가 아파트 단지에 놔둔 고양이 사료를 버리는 등 캣맘인 B씨와 수개월 전부터 갈등을 빚어왔다. A씨는 경찰에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참치캔 대신 차량용 부동액을 넣으라', '카센터에서 폐냉각수를 얻어와라' 등 캣맘을 괴롭히는 방법이라는 글들이 올라와 있다.


경기도 안산시의 한 공원에서는 보건소에서 살포한 쥐약에 고양이들이 집단 폐사하는 일도 있었다. 안산시 상록수보건소는 지난 1월16일부터 2월22일까지 상록구 일대 배수구, 녹지, 숲길 등에 쥐약 약 1000포를 뿌렸다. 살포 지역은 길고양이들이 많이 서식하는 곳이었다. 먹이로 오인해 쥐약을 먹은 길고양이들은 대거 폐사했다. 최근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다 쥐약을 발견한 주민들의 항의로 현재는 전량 수거 중이다.


질병관리본부 지침에 따르면 쥐약은 '독극물'이라고 표시된 용기에 담아 다른 포유동물이 섭취하지 못하도록 미끼통 용기에 담아 설치해야한다. 하지만 이같은 규정은 지켜지지 않는다. 상록수보건소는 "쥐가 늘어 민원이 많고 감염병 예방을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캣맘 A씨는 "공공기관조차 야생동물과 도시의 공존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결여돼 있다"며 "생명존중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데 우리사회가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공생의 첫 걸음을 '반성'과 '이해'로 봤다. 조희경 대표는 "인간이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며 "길고양이의 경우 사회적 갈등이 많지만 대안모색을 통해 같이 살아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함께 할 수 있다"고 봤다. 전진경 이사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길고양이의 존재를 싫어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에게도 꾸준하게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태영 기자 factpoet@asiae.co.kr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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