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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여성히어로

최종수정 2019.03.12 11:42 기사입력 2019.03.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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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여성히어로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필자가 일곱살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씁쓸한 기억이 있다. 유치원 단골 역할놀이 중 하나인 병원놀이에 앞서 의사와 간호사 역할을 정했고, 의사를 희망한다고 손을 번쩍 든 내게 선생님이 말했다. "의사는 남자들이 하고, 여자들은 간호사나 환자를 하렴." 성차별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무렵 필자는 단순히 의사를 하지 못하게 됐다며 엉엉 울었다. 유치원 병원놀이의 추억은 필자가 점차 어른이 돼가면서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우리사회에 얼마나 통렬히 남아있는지 깨닫게 한 첫번째 기억이기도 하다.


며칠 전 우연히 딸 아이와 만화를 시청하다가 필자가 어린 시절 봤던 만화와 상당히 달라졌음을 느꼈다. 디즈니채널에서 방송되는 이 어린이 만화의 주인공은 흑인 여자 꼬마의사다. 고장난 장남감을 뚝딱 고쳐주는 이 꼬마의사 앞에 성에 갇힌 공주가 나타나고, 곧 말을 탄 기사가 '구해줄게요 공주님' 외치며 창을 들고 돌진한다. 그 때 공주는 쿨하게 외친다.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거든? 암벽등반을 하듯 위태롭게 성벽을 내려와 탈출에 성공한 공주는 씩 웃는다.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8일(현지시간) 전 세계 곳곳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3ㆍ8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에서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과 참정권 등을 요구한 여성들의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됐지만 그 후 10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전 세계 수백만명의 여성은 임금 격차와 폭력 등에 맞서 '차별 없는 세상'을 촉구했다.


지금 국내 극장가는 두 여성을 앞세운 영화가 흥행몰이에 나섰다. 미국 마블 스튜디오가 처음 여성 주인공을 단독으로 내세워 만든 히어로물 '캡틴 마블'은 누적관객수 320만명을 넘어서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지난 주 공개된 이 영화는 개봉 첫 주,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점령하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도 누적관객수 100만명을 뛰어넘으며 뒤를 잇고 있다. 캡틴 마블 영화 속 대사는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네 엄만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씩씩한 딸을 낳아서!" 파란색을 좋아하고 로보트와 노는 것이 최고인 네살 딸이 자란 세상은 오늘보다 낫길, 여성히어로가 더이상 주목받는 세상이 아니길 진심으로 염원한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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