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머리 뚫린 토우/김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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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누라가 남편에게 제 이야기 들어 달라고 인상을 쓴다
 아이는 입에 손가락을 문 채 칭얼거린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울고 있는 영희, 성내는 철수
 목을 뒤로 젖히고 웃는 옆집 아저씨, 자기 말만 하는 이장,
 입이 닷 되는 나온 식당 아줌마, 역정 내는 할아범,
 모두 머리 위가 뚫렸다, 텅 비었다


 부산 기장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토우 수천 개, 수만 개가 제각각 사연과 표정으로
 말을 건다, 발목을 잡는다
 멸치내 미역내로 썩은 생각 다 비워 내고
 짠 바닷물로 머릿속 말끔히 씻어 낸 뒤
 하늘의 해와 달, 별, 다 받겠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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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비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을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만 같아 화가 날 때도 있고 괜히 불미스러운 일에 엮일까 봐 피할 때도 있다. 그런데 나 또한 누군가가 보기엔 그럴 것이다. "목을 뒤로 젖히고 웃는 옆집 아저씨"나 "자기 말만 하는 이장", "입이 닷 되는 나온 식당 아줌마", "역정 내는 할아범"처럼 나도 당신도 그저 "울고 있는 영희"나 그냥 "성내는 철수"처럼 보일 것이고 또한 그렇게들 산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어떻게 사람이 매번 매사에 줏대와 신념을 지니고 이성적으로만 살 수 있겠는가. 이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제각각의 사연과 그간 익혀 온 표정'으로 산다. 그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시인이 적어 둔 바와 같이 단, "잘 비었"을 때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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