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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편 내편, 고용절벽 허물기]乙 눈물 빼는 甲님, 결국엔 피눈물 흘리는 막장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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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편 내편 해묵은 고용갈등 벗자④]갑vs을, 논란 끊이지 않는 관계

원청-하청업체·가맹본부-가맹사업자간 지위 남용
을의 피해 넘어 고용창출, 경제성장 정책 장애물로
단기적 대책보다는 '상생 프레임' 개선작업이 절실
그래픽=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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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 A업체에 근무하는 심유순(40·가명)씨는 지난달 정들었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초등학생인 아들 둘을 키우면서도 재취업에 성공해 '리턴맘'이 됐던 심씨가 애착을 갖고 다녔던 회사였다. 심씨는 “이런 막말까지 들어가면서 더 다녀야 하는가 싶었다”며 “본사 직원의 갑질 때문에 회사에 대한 정이 떨어졌다”고 울먹였다.

심씨는 지난달 1일, 휴대폰 기기변경을 요청하는 한 고객의 상담을 처리했다가 회사의 본사 모 부장으로부터 폭언을 들었다. 고객 대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너 A 아니잖아. 이름도 없는 회사 다니면서 왜 A라고 하냐” “서비스를 한다는 X이 그렇게 뻣뻣하게 구니까 고객이 일처리 하다 말고 그냥 간 게 아니냐” “개 같은 X” 등을 들은 심씨는 전화를 끊은 뒤에도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이 귀에 맴돌았다. 보다 못한 남편이 다시 통화해 사과를 요청하자, 본인이 'A 본사'의 '부장'이라고 강조를 했는데도 뻣뻣하게 대해서 그랬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심씨는 “본사가 아닌 플라자에 근무하는 '을'이라는 게 큰 잘못이고 죄인 취급받는 게 한탄스럽다”고 말했다.
심씨는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을'이다. 원청 업체와 하청 업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맹본부와 가맹사업자, 대리점 본사와 대리점주 등 주체만 바뀔 뿐 본질은 같다. 최근 국내에서 불거진 갑을논란을 보면 대부분 거래관계에서 생긴다.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가진 갑이 거래 상대방인 을에게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면서 문제가 된다. 이 같은 갑을관계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을이 서럽다' 차원이 아니라 국내 근로자의 90%가 속하는 하청, 비정규직, 가맹사업자, 대리점주 등 '을'에 속하는 이들의 활력을 떨어뜨려 정부가 강조하는 고용창출과 경제성장 등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을만의 문제가 아니다. 갑을논란의 이슈에선 갑도 매출하락을 겪는 등의 즉각적인 타격을 입는다.

2013년 대리점에 '물량 떠밀기'로 갑질논란 중심에 섰던 남양유업이 대표적이다. 남양유업은 그해 적자전환했다. 2012년 3분기 428억1000만원에서 이듬해 같은 기간 140억원 적자를 낸 것. 2013년 한때 114만원대까지 올랐던 남양유업 주가는 2014년 말 59만원대까지 곤두박질쳤고, 지난 13일 종가 기준 75만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갑질 이슈 이후 30% 가까이 떨어진 셈이다. 이후 남양유업은 600억원의 상생기금을 내놓으며 진화에 나섰지만 현재 업계 1위 자리에서는 밀려난 상태다.

프랜차이즈 업계에도 마찬가지다. 김밥전문점 바르다김선생은 가맹점주들로부터 불공정행위 규탄을 받았다. 바르다김선생 가맹점주 112명은 3월 가맹본사를 불공정거래법 위반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식자재를 특수관계인을 통해 비싸게 구입하도록 강제하고 가맹본사가 거래상의 지위를 남용해 영업지역을 일방적으로 축소해 가맹점주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박재용 바르다김선생 가맹점주협의회장은 “두부 한 모에 2700원, 마트에서 2만원대에 파는 식용유는 3만원대에 팔고 삶은 달걀은 15개에 5700원에 팔며 이익을 냈다”며 “월매출 5000만원을 올려도 점주는 적자인 기형적인 구조”라고 꼬집었다. 이 역시 결국 거래관계에 있어서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다 생긴 갈등이었다. 이 밖에도 광고·판촉비 등 비용부담을 가맹점주에게 떠넘겨 피자헛, 아딸 등이 홍역을 치렀다. 이들 모두 매출 감소와 점포 수 감소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갑을논란으로 이후 갑을 규제하는 하도급법, 대규모유통법, 가맹사업법, 대리점법 등의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졌지만, 이 같은 '갑을 프레임' 속에서 찾아낸 해법들은 또 다른 약자(병)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공정위가 추진하는 '하도급대금 직불제'가 그 예다. 하도급대금 직불제는한국토지주택공사(LH)·한국도로공사·지방자치단체 등 발주자가 장비·임금·자재 등의 공사대금을 원사업자를 거치지 않고 하도급 업체에 직접 지급하는 방식이다. 공정위는 하도급대금 미지급 문제 해소를 위해 16조원에 달하는 공공공사에 대해 이 도입을 추진 중이다. 종합건설업체(갑)로부터 하청을 받는 '을'인 전문건설 업계는 “하도급 거래가 투명해질 것”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하도급자가 대급을 받아도 자재 납품 업체나 덤프트럭 기사 등 '병'에게는 제때 대금이 지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2010년부터 5년간 하도급 업체에 의한 건설기계 대여대금 체납액은 전체의 87%인 220억원이었으며, 전국건설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설 명절, 악성 체불 23건 중 19건이 하청 업체서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갑을 프레임이 아닌 '상생 프레임'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대표를 지냈던 당시 “을만을 위한 프레임을 통해서는 단편적이고 현상적인 문제밖에 해결할 수 없다”며 “갑과 을이 상생할 수 있는 관련법안의 개선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도 갑을 상생의 프레임에서 갑도 위하고, 을도 위하는 중립적인 공정위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위원은 논문을 통해 “갑을 프레임에 기초한 정책은 과잉규제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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