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무제한이다. 국가는 물론이고 기업이나 가정, 심지어 개인에게까지도 위기관리는 삶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된다. 특히 요즘은 과거와 달리 관심 대상과 영역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 예전에는 위기관리 연구의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나라의 학자들조차도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나 남극, 북극의 위기는 사회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주장을 거침없이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북극에서 얼음이 녹아내리는 현실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남미 아마존 지역의 가뭄이나 대규모 삼림 화재가 국제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우리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해안선을 따라 서로 연결돼있는 말라카 해협과 싱가포르 해협의 위기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이 해협의 위기에 대해 우리 정부는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바다가 없는 스위스 학자는 무슨 이유로 이 해협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그리도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는가. 최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중국, 인도, 스위스, 캐나다, 벨기에, 독일, 영국, 아이슬란드 학자들이 일본 교토대학에 모여 이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고민했다. 길이 800㎞의 말라카 해협과 폭이 500m 남짓 되는 싱가포르 해협, 그 좁은 해협 옆에 있는 대규모 석유화학 산업 단지와 인접한 항만 시설에 대규모 재앙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논의가 2년여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무역의 40%, 세계 석유 무역의 50%, 연간 7만5000여척의 선박이 드나드는 곳이자 동양과 서양 무역을 잇는 단 하나의 통로가 바로 이 해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학자들이 왜 이 문제에 대해 그리도 중요하게 논의하는지를 금방 이해하게 될 것이다. 특히 중동으로부터 일본, 대만, 한국, 중국으로 수송되는 석유의 80%가 이곳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면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도 있음을 쉽게 실감하게 된다. 말라카 해협에는 쓰나미, 해적, 테러리즘의 위협 등이 상존하고 있다. 또 좁디 좁은 싱가포르 해협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이나 석유 수송 선박의 가스나 기름 유출로 인해 대형 해양 화재가 발생하면 우리 경제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게 된다.
이제 국가위기관리는 자국의 영토 내에서만 발생하는 위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남의 나라 해협의 위기를 공동으로 고민하고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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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인한 대규모 항공기 결항 사태에 대한 논의를 하던 중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 학자들이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을 전제로 이에 따른 위기관리 방안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미세한 화산재의 비행기 엔진 유입에 따른 안전 위협은 유럽 국가의 항공기 안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핵심기반 중의 하나인 부산항이 태풍이나 테러, 신종 플루, 사이버 공격 등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보다 다른 나라 정부나 학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위기관리에 소홀하면 어느 날 갑자기 부산항이 동북아시아 허브 항구의 지위를 고베나 상하이, 홍콩, 대만에 넘겨줘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15년 전 지진 피해로 인해 고베항이 부산항에 자리를 내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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