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주목받는 정상, 페르난데스 아르헨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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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윤재 기자]서울 G20 정상회의에 참가하는 여성 정상은 단 세 명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줄리아 길라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그리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Cristina Fernandez) 아르헨티나 대통령. 특히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남아메리카 정치 세계에 여성 바람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에서 시작됐던 남미지역의 여풍은 페르난데스를 디딤돌로 남미 전역으로 퍼졌고, 브라질 대통령까지 옮겨 붙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브라질 대선의 결선 투표 결과, 집권 노동자당(PT)의 지우마 호세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이 같은 남미 정치판의 여풍을 확인시켰다.


페르난데스가 이처럼 탄탄한 정치적 입지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57년간 살아온 그의 인생으로 되짚어볼 수 있다. 페르난데스는 지난 195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주(州) 라 플라타에서 태어났다. 라 플라타 국립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시절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페론당의 청년조직에서 활동하면서 정치가로서의 꿈을 키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한 군사 정부가 페론당을 압박하면서 정치활동을 접었다. 이후 페르난데스는 대학시절 정치활동을 하면 만난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과 함께 남편의 고향으로 떠났다. 남편의 고향에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훗날 정치 재개를 꿈꿔왔다.

그가 대학생 당시부터 활동했던 페론당은 1946~1955년 대통령으로 일했던 후안 도밍고 페론이 이끌던 정당이다. 페론당은 중산층을 육성하고 중남미를 단합시키는 주춧돌이 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페론 전 대통령의 부인인 에바 페론(애칭 에비타)이 빈민가 출신으로 서민들을 위한 정책에 앞장섰던 것이 페론당의 정치색으로 대변되기도 했다. 때문에 페론당은 포퓰리즘에 근거한 실체 없는 정당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페르난데스는 1980년대 아르헨티나에 군사독재가 끝나고 정치에 복귀하면서도 에비타의 노선을 따르며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꾸준히 에비타의 정치적 이념을 이어온 그는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에비타의 사진을 활용해 서민층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때문에 '제2의 에비타'라는 별명이 지금도 수식어처럼 그를 따라다닌다.

그녀의 또 다른 별칭은 남미의 힐러리 클린턴이다. 중산층의 가정에서 자라 법학을 공부한뒤 정치판에 뛰어들어 남편을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묘하게 스토리가 겹쳐진다. 미국의 민주당과 비슷한 노선을 걷고 있다는 점도 그를 남미의 힐러리로 평가하는 이유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보다 먼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과 남미 여성 정치세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힐러리 클린턴보다 앞선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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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데스는 아르헨티나 최초의 여성대통령이기도 하지만 세계 최초의 부부 대통령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2007년 10월 대선에서 남편에 이어 여당 후보로 당선된 페르난데스는 세계 최초 부부 대통령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2011년 차기 대선에서 남편이 다시 후보로 등장할 지 여부가 관심을 모았지만 불행히도 지난 10월 말 남편이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남편의 죽음이 페리난데스의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관심도 새롭게 그녀를 둘러싼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페르난데스는 이번 G20 참가를 계기로 신흥경제국에 대한 역할과 기능을 더욱 강조할 것으로 풀이된다.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등과 함께 신흥경제국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활동을 할 것이라는 평이다. 또 메르코수르(Mercosurㆍ남미공동시장)의 주축으로 브라질과 함께 남미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 세계의 관심을 이끌기 위한 노력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윤재 기자 gal-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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