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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포럼]더 소심하고 덜 선명해 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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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람들의 혈액형을 물어보게 됩니다. 혈액형과 성격과의 관계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라는 것은 물론 잘 알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도 가끔 혈액형 타령을 하는 것은 제 성격이 사람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A형 성격과 딱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혈액형이 A형, B형, O형 그리고 AB형인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었답니다. 뭔가에 불만을 품은 AB형이 숟가락을 던지고 식당 밖으로 나갑니다. 내키는 대로 표현하는 성격을 드러낸 것이지요. 성격이 둥근 O형은 AB형을 달래러 이내 밖으로 나가고, 세상사 늘 자기 스타일대로인 B형은 아무 신경 안 쓰고 밥을 계속 먹습니다. 그리고 A형은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B형에게 묻습니다. "다들 내가 싫어서 그러는 거지?"라고요.
저는 여기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바로 제가 그런 성격이거든요. 남의 평가와 시선에 늘 신경을 쓰며 사는 소심한 사람 말입니다. 그래서 뭔가 선명한 의견을 내기가 제겐 참 어렵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생각을 다 반영해서 답을 내고 싶어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갈등의 상황 앞에 놓이면 강력한 의견과 단호한 목소리를 더 좋아합니다. 저 역시도 목소리 크고 확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기대게 되곤 합니다.

그런데 인터넷 댓글들을 읽다 보면 단호하고 선명한 사람들이 좀 과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곳곳에 넘쳐나는 '보수꼴통'과 '좌빨'과 '애플빠'와 '삼성알바'라는 말들은 보면 볼수록 마음을 답답하게 합니다. 4대강 사업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일과 이념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고, 아이폰의 장단점을 논의하자 치면 바로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빠'나 '알바'가 되는 분류에 멀미가 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분류 놀이는 꽤 재미있습니다. 상대를 '좌빨'이라거나 '애플빠'로 만들어놓으면 우군을 모아서 공격하기가 쉽습니다. 특히 상대방이 논리적인 허점을 보였다거나 수적으로 열세라면 상대를 '격파'하는 쾌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경청할 만한 의견들이 묵살될 수 있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의견이 나오기 위해 이루어졌던 수많은 검토와 고민도 간단히 조소의 대상이 돼버리는 것은 슬프기까지 합니다.
야당에서 영입하고 싶어하는 분이 이번 재보선에서 여당후보로 출마한 친구들을 지원하자 몇몇이 '변절자'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건 너무 센 표현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가 몇 있고, 그 친구들에게 힘내라고 어깨 두드려주는 것을 악덕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찍은 젊은이들은 북한에나 가서 살라고 높으신 어떤 분이 일갈했더군요.

선생 노릇하고 있는 입장에서 장담하건대 우리 젊은 친구들 가운데 종북세력은 거의 없습니다. 이 나라가 마음에 안 들면 북한에 가라는 건 잔혹한 이분법입니다. 우리나라를 좀 더 좋은 나라로 바꾸고 싶어하는 나와 '다른' 의견이 있다고 봐주기로 하면 좋겠습니다. 최근 대통령이 쓴 '친 서민'이라는 표현을 '반 대기업'이라고 읽는 분들도 등장하고 있던데 그게 반대말이었던가요?

단호하고 선명한 주장은 사람의 마음을 쉽게 끌지만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희미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너무 복잡해지고 재미도 줄어들지 모릅니다.

하지만 덜 재미있더라도 사람들의 조금 더 미세한 마음결을 헤아려 볼 때는 아닐까요? 이것도 소심한 A형이라서 하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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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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