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4일 북한은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전격단행된 화폐개혁은 통화팽창을 억제해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더욱 강화하려는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의구심이 적지 않게 든다.
북한의 중앙은행 조성현 책임부원(44)은 조선신보와 인터뷰에서 화폐개혁은 "자유시장경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경제관리원칙과 질서를 더욱 튼튼히 다져나갈 것"이라며 "앞으로는 경제활동의 많은 몫이 시장이 아니라 계획적인 공급유통체계에 따라서 유통되게 되며 이렇게 되면 계획경제 관리질서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북한이 '7·1 경제관리개선조치'로 도입한 시장경제를 억제하는 게 이번 조치의 궁극목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증거도 보인다. 먼저, 북한이 공개한 새 돈의 제작년도다. 조선신보에 공개된 50원, 10원, 5원권 지폐에는 발행일이 '주체 91 2002'로, 나머지 5000원, 2000원, 1000원, 500원, 200원, 100원 6종에는 발행일이 '주체 97 2008'로 인쇄돼 있다. 동전 역시 1원, 50전, 10전에는 주조 시점이 '주체 91 2002'로, 1전과 5전에는 '주체 97 2008'이다.
북한당국이 화폐개혁을 2002년과 2008년에 계획하고 있었지만 어떤 사정 때문에 하지 못했다는 추측을 가능케한다.
특히 2002년에는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공식허용하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가 있었다는 점에서 북한이 화폐개혁을 동시에 하려고 했지만 급격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못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는 이번 화폐개혁의 의도도 '7·1 경제관리개선조치'의 연장선상에서 읽어 내려가야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마찬가지로 최근 북한 경제이론지인 계간지 '경제연구'에 실린 '화폐, 화폐유통은 계획적경제관리의 보조적 수단'이란 논문에서도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계획적 경제관리원칙이 기본이며 화폐와 가격, 그와 관련된 경제적 공간들은 경제의 계획적 관리를 더 효과적으로, 합리적으로 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라고 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말이 인용돼있다. 화폐 자체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주장 보단, 화폐를 체제 성격에 맞춰 더 잘 이용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이는 지난 4월 북한의 개정 헌법 29조·40조·43조에서 '공산주의'란 말이 모두 삭제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산주의는 파악이 안 된다"며 "사회주의는 내가 제대로 한번 해보겠다"고 말했다고 알려진 것처럼 이번 화폐개혁을 완전한 계획경제로 복귀를 하려는 단순한 반동적 조치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무게를 실어준다.
아울러 추석 이산가족 상봉 1차 행사에서 남측 기자단과 만난 북측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이런 언급을 소개하면서 '공산주의는 파악이 안 된다'는 의미에 대해 "공산주의는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의 구분이 없는, 계급이 하나뿐인 사회인데 미제(미국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북한에서도 완전한 계급평등사회는) 존재하기 힘들다는 의미"라고 설명했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화폐개혁의 목적은 과도한 인플레이션과 국가 질서의 무력화를 막기 위한 조치로 해석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스스로도 화폐개혁의 지향점을 "나라가 가격조정조치를 취한 2002년 7월(7·1 경제관리개선조치)의 수준"으로 밝혔다. '7·1 경제관리개선조치'가 내려지기 '이전'이 아닌 '조치 당시'라는 점을 공개한 것이다.
발행연도가 2008년인 초고액권도 향후 북한의 행보를 짐작케하는 부분이다. '5000원'은 옛날돈으로 '50만원'에 해당돼 인플레가 심한 시장경제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불필요하다. 북한에서는 4인가족의 한 달 생활비가 한 달에 5만원 가량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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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준 기자 hjunpar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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