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스마트폰 통해 보고시간 단축, 체계도 파괴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지만 감시수단이라는 부작용도 존재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스클리안스키 동지! 회신을 할 때는 암호를 사용하시오. 나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오. 이것을 돌려보내시오. 비밀엄수 요망. 1921년 2월.’

‘크렘린의 수령들’이라는 책에서 소개된 소비에트 연방 창시자인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이 당 간부에게 보낸 비밀 서신 중 한 대목이다.


레닌은 공식적인 업무 지시 절차 대신 전보나 쪽지 등을 통해 특정 인사에게 직접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당 상층부 요원들과의 관계는 이러한 쪽지를 통해 이어졌으며, 쪽지의 전달은 매우 비밀스럽게 이뤄졌다고 한다. ‘닫힌 사회’였던 공산국가 시절이었던 만큼 무대 뒤편에 은밀히 감춰져 있는 영역이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쪽지는 권력자가 추종자를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통신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쪽지 문화가 사회 발달에 음성에서 데이터로 통신수단의 전환이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데이터 통신으로의 전환은 과거 군대조직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던 기업에서도 보고체계 파괴를 불러 일으켜 말단 직원이 CEO와 직접적인 대화를 가능케 하고 있다. 이것을 개방과 공유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결제서류 다 됐나요?’= 모 대기업 신사업 TF에 근무하는 김모씨는 ‘결제서류 다 됐나요?’라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발신자 번호는 상관의 것이 아니었다. 잘못 보낸 것인가 싶어 무시했더니 5분후 같은 내용의 문자가 또 들어왔다. ‘잘못 보내신 것 같습니다’라는 답 문자를 보냈더니 같은 번호로 ‘회장입니다. 지금 전화주세요’라며 문자가 왔다. 혹시나 하고 전화를 해보니 사장도 아닌 모그룹 회장이었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을 보고 받은 회장이 진척사항을 직접 챙기고 싶어 실무 직원인 김 씨에게 직접 전화를 한 것이다. 상관은 물론 사장도 모르는 상황이었던지라 김 씨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열심히 하라”는 말을 남긴 후 전화를 끊었다.


기업, 금융기관 임원들은 스마트폰이라 불리는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휴대전화가 보급된 지 오래다. 인트라넷으로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파악하고 결제할 수 있어 업무 공백을 최소화 해준다.


PC 시장의 주요 고객인 기업 고객들이 직원들이 사용하는 PC 교체해주는 양이 올해에 비해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신 임원들만 쓰던 스마트폰 보급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국내에서도 업무용 스마트폰의 가격이 PC와 비교해도 충분히 낮춰줬기 때문이다. 수년 후에는 스마트폰을 통한 전사적인 업무의 모바일 오피스 구현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모바일 오피스에서는 아무래도 종이 서류나 유선 인터넷과 같이 다량의 업무 보고서는 아직까지 처리가 불가능하거나 업무 처리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고 내용은 아주 간략하고 양이 적어야 한다. 많은 분량의 보고서를 꼼꼼히 읽는 사람도 없고, 읽을 시간도 없다는 이유도 있다. 최근 포스코가 1페이지 보고서를 도입한다고 하는데, 보고서 작성에 들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바일 오피스에서도 잘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단문 위주의 간단한 문자 대화가 통신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내년 이후 이메일 소통 수가 줄어들고 대신 그 자리를 메신저나 트위터 등이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 같은 상황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메신저와 트위터 등은 모두 휴대전화로 구현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직원들의 보고 능력의 척도는 핵심 내용을 얼마나 짧게 요약해 전달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은 어때요?’= 그런데, 보고문화의 변화가 모든 사람들에게 반갑기만 한 일은 아니다. S기업 마케팅실에 다니고 있는 문모씨는 타 부서 상관으로부터 “지난 주말에 선 봤다며?”라는 인사말을 들었다.


사내에서는 같은 부서 동료 직원에게만 이야기를 해줬을 뿐 팀장에게도 말하지 않은 내용인데 지나가다 보면 인사 정도나 하는 사이인 타 부서 상관이 알았다니, 뭔가 찜찜했다. 기억을 곱씹어보니 선 자리에서 나와 식사를 하러가던 도중 길에서 만난 회사 사람과 인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직원이 회사에 와서 전혀 생각 없이 회사 동료들과의 메신저에서 이야기를 던진 게 퍼지고 퍼져 상관의 귀에 까지 들어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회사내외에 떠도는 소문은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퍼져 나간다. 지방 공장에서 벌어지는 일도 마찬가지다. 메신저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덕분이다.


물론 좋은 소문이라면 얼마든지 퍼져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과 다른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 있는 불량 소문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CEO나 임원들에게도 이러한 소문은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단계와 절차를 무시한 보고체계 구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직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오히려 기업 내부 간 대화는 더욱 단절되고 있고, 모든 기업들이 소통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CEO가 직접 나서고 있다.


지난해 한 CEO는 아예 메신저를 없애 버리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는데, 이는 소통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인스턴트 메신저의 전원 온·오프 여부, 질문에 대한 반응 시간으로 직원들의 근태를 체크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메신저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한 강공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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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CEO는 아예 최말단 거래처를 직접 방문해 현장에서의 애로사항을 직접 청취했다. 앉아서 보고만 받다보니 도무지 문제의 본질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 CEO들이 소통경영에 전념을 기울이는 이유는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반성에 따른 것”이라면서 “소통의 수단이 자신을 감시한다는 우려감 대신 업무를 효율적으로 이뤄지게 하고 조직간 벽을 허무는 방법이 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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