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예쁜 딸을 낳으려면...
[아시아경제 송화정 기자]햅쌀을 곱게 빻아 끓는 물을 넣고 익반죽을 한다. 표면이 매끄러울 정도로 치대 반죽이 되면 적당한 크기로 떼어 동그랗게 만든 후 깨, 팥, 콩 등 햇곡식으로 준비한 소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예쁘게 빚는다. 찜통에 솔잎을 깔고 그 위에 빚은 것을 가지런히 얹는다. 찜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며 부엌 안에는 솔잎향이 은은하게 감돈다.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인 송편을 만나기 위해선 이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추석하면 떠오르는 송편은 가장 명절의 의미가 잘 살아있는 음식이 아닌가 싶다. 온 가족이 모여앉아 송편을 빚고 그것을 또 이웃들과 나눠먹는, 만들면서부터 먹기까지 그야말로 정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어른들 틈에 끼어 송편을 빚다보면 어른들은 흔히 그런 말씀을 하신다.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고. 그저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긴 하지만 그만큼 정성 들여 송편을 빚으면 딸도 예쁜 딸을 낳는다는 의미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뿐 아니라 옛날에는 송편을 통해 태아의 성별을 점치기도 했다. 송편에 솔잎을 가로로 넣고 찐 후 아이를 가진 여자가 송편을 깨물었을 때 솔잎의 끝쪽을 깨물게 되면 아들을, 반대편을 깨물면 딸을 낳는다고 했다.
그 해 가장 먼저 추수한 햅쌀로 빚은 송편은 '오려송편'이라고 해 각종 햇곡식, 햇과일 등과 함께 차례상에 올려 조상님께 한 해의 수확을 감사드린다. 달을 상징하는 송편은 빚기 전에는 동그란 모양의 보름달을 그리고 빚은 후에는 반달 모양이 된다. 송편은 지역별로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서울 지역의 송편은 세련미를 살려 한입에 들어갈 크기로 작게 만든다. 강원도는 그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도토리, 감자 등을 이용한 송편을 만들고 손자국 모양을 내 두툼하게 만든다. 전라도 고흥에서는 모시잎으로 만든 모시송편이 유명하다. 제주도는 송편을 둥글게 만들고 완두콩을 소로 넣어 그 모양이 마치 비행접시를 연상시킨다. 평안도 해안지방에서는 조개가 많이 잡히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조개 모양으로 빚는다.
최근에는 각종 컬러 송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다. 송편 반죽에 오미자, 복분자, 포도즙, 치자물 등을 첨가해 기존의 흰색과 쑥 등을 넣은 녹색 외에 다채로운 컬러 송편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추석에 송편이 있다면 중국에는 월병(月餠·위에빙)이 있다. 중국 남송시대부터 전해지는 중국 전통 과자인 월병은 음력 8월15일 보름달의 모양을 본 떠 둥글게 만들어 월병이란 이름이 붙었다. 중국은 추석을 중추절(中秋節·중추제)이라 부르는데 중국이 중추절에 쉬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해부터로 우리와는 달리 그리 크게 여겨지는 명절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송편이라 여겨지는 월병만은 다르다. 중추절이 되면 '월병경제'말이 생겨날 정도로 월병이 이 시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시즌이 되면 각 쇼핑센터와 상점에는 월병 전용 가판대가 설치돼 대대적인 판촉에 들어가며 유명 레스토랑에서도 각자의 특색을 담은 월병을 선보인다. 심지어 세계적인 커피 체인 스타벅스도 이 시기에는 '스타벅스 월병'을 내놓는다.
팥, 과일, 육류, 연밥이 들어간 일반적인 월병부터 중국 약재가 들어간 월병, 전복이나 해삼월병, 초콜릿 월병, 커피 월병 등 날로 월병의 종류는 늘어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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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병이 이처럼 어마어마한 특수를 누리는 것은 단순한 명절음식의 의미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황금을 넣은 월병을 비롯해 심지어는 아파트가 사은품으로 딸린 호화 월병까지 등장해 뇌물의 수단으로 사용된 지 오래다. 이처럼 권력자에게 호화 월병을 뇌물로 바치는 현상을 빗대 '권병(權餠)거래'라는 말도 생겨났다. 뇌물 뿐 아니라 대목을 노린 불량 월병까지 판을 쳐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월병이 올해는 외국의 식품 안전법 등에 발이 묶여 수출이 막히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올해 유난히 짧아 아쉬움이 더했던 추석이 이제 가고 있다. 하지만 내년 추석은 화, 수, 목으로 잘만 하면 긴 연휴를 누릴 수도 있으니 올해의 아쉬움 마음은 송편으로 달래고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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