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비 오는데 돈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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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창가를 두드리고 진회색 비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무겁게 느껴지는 그런 날 흔히 드는 생각은 '부침개나 부쳐 먹을까?'다. 부침가루를 물에 풀고 냉장고에서 찾아낸 자투리 야채들이나 김치를 종종 썰어 섞은 다음 기름을 두른 팬에 한 국자 듬뿍 넣으면 '지지직'하는 소리에 입에는 벌써 침이 고인다. 노릇노릇 부쳐낸 부침개를 먹다 보면 역시 비오는 날 먹는 부침개가 최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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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비가 내리던 어느 주말 일행이 파전에 막걸리가 먹고 싶다고 하자 빗속을 뚫고 1시간이 넘게 이태원을 헤매며 부침개 가게를 찾아다녔다. 확실히 비가 내리는 날의 분위기를 부침개를 땡기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장맛비가 세차게 서울을 휩쓸고 지나간 뒤 찾은 광장시장. 빈대떡이 유명한 이 시장의 한쪽에는 빈대떡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다. 여기저기서 부침개를 부치는 소리와 고소한 기름 냄새가 시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얼추 파장시간이 가까운 때라 그날 장사를 접고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한 손님은 "비가 내리던 주말 내내 이곳 빈대떡이 생각났다"면서 "시장에 나온 김에 그날 못먹은 생각에 빈대떡집을 찾았다"고 말했다. 더위에 시장 안의 부침개 부치는 열기까지 더해져 부침개를 부치는 아주머니들은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고 있었다. 광장시장에서 10년 넘게 부침개를 부치고 있다는 한 아주머니는 "장맛철에 부쩍 찾는 사람이 많다"면서 "더워서 불 가까이 하루종일 있는 게 여간 힘들지 않지만 장맛철에 일부러 찾는 손님들 때문에 장사할 맛이 난다"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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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철 부침개의 인기는 백화점이나 마트에서도 뜨겁다. 이를 겨냥해 유통업체들에서는 부침개 재료 특가전이나 부침개 모음전 등의 이벤트를 준비해 장마 마케팅에 나서기도 한다. 비 오는 날과 맑은 날의 부침가루 매출은 두 배나 차이가 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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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사람들은 비오는 날 왜 유독 부침개를 찾는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소리 때문이라는 설이다. 부침개를 부칠 때 나는 지지직 소리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비슷하기 때문에 빗소리를 들으면 자연히 부침개를 떠올리게 된다는 말이다. 그 외에 비가 오는 날은 저기압으로 인해 냄새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낮게 깔려 더 멀리 퍼지기 마련인데 부침개 부칠 때의 고소한 기름냄새가 더욱 사람의 입맛을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의학적으로도 비오는 날 습도가 높아지면 혈당치가 내려가면서 인체가 기름진 것을 찾게 된다고 한다. 이에 적합한 음식이 밀가루 음식이기 때문에 밀가루를 주재료로 만드는 부침개가 더 당기게 된다는 것.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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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뿐 아니라 주머니가 허전할 때도 부침개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는 '빈대떡 신사'라는 노래 때문이다. 이 오래된 노래의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가사는 돈 없을 때 빈대떡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노래로 빈대떡은 값싼 음식의 대명사가 됐지만 빈대떡이란 이름을 살펴보면 이같은 내용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빈대떡이란 이름에는 여러 가지 유래가 있다. 먼저 한자 어학서인 '역어유해'에는 중국 떡의 일종인 '병자(餠者)'에서 유래된 빈자떡이라는 말이 나온다. 또한 고서인 '명물기략'에서는 중국 떡을 가리키는 알병의 알자가 빈대를 지칭하는 갈자로 잘못 알려지면서 빈대떡이 됐다고 한다. 또는 지금의 정동이 예전에 빈대가 많아 '빈대골'로 불렸었는데 이곳에 부침개 장수가 많아 빈대떡으로 불리게 됐다는 설도 있다. 특히 민속학자 방종현은 빈대떡을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떡이라는 의미의 '빈자(貧者)떡'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는데 이는 빈대떡 신사의 가사와 그 의미가 통한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한동안 주춤했던 장마전선이 다시 북상할 것이라고 한다. 비가 내려 왠지 우울한 날에는 가까운 사람들과 빈대떡에 막걸리를 나눠보자. 저렴한 가격과 고소한 맛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로 우울함이 말끔히 씻길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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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정 기자 yeekin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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