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윌슨-리 '천사들의 문법'
르네상스의 신동 피코가 붙든 언어의 숭고한 힘
900개 논제에서 수능 금지곡까지 이어지는 말의 신비

한 문장이 사람을 붙잡을 때가 있다. 논리 때문만은 아니다. 소리의 높낮이, 반복되는 운율, 이상하게 귓속에 남는 리듬이 먼저 몸을 건드린다. 자장가는 아이를 잠재우고, 연설은 광장을 움직이며, 노래 한 구절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말은 뜻을 전달하는 도구이기 전에 사람을 흔드는 물질일지도 모른다.


[이 책 어때]천사가 되려던 인간, 말에 붙들린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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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리의 '천사들의 문법'은 그 흔들림의 역사를 르네상스의 한 천재에게서 길어 올린다.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 스물네 살에 피렌체에 들어와 종교, 철학, 자연철학, 마법에 관한 900가지 논제를 내걸고 누구와도 토론하겠다고 선언한 인물이다.

흔히 "르네상스 선언문"으로 불리는 그의 연설문은 인간이 정해진 자리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근대적 인간관의 출발점으로 읽혀왔다. 그러나 이 책이 주목하는 피코는 조금 다르다. 인간의 존엄을 외친 청년 철학자라기보다, 언어가 인간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를 위험하게 물었던 사람이다.


피코의 야심은 한 사상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그리스도교 신학, 유대교 카발라, 중세 아랍 철학, 고대의 구전 전통을 한데 끌어모으려 했다. 하나를 쪼개 여럿으로 만들고, 여럿을 다시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였다. 중요한 것은 그 종합의 중심에 언어가 있었다는 점이다. 히브리어와 라틴어, 고대 셈어, 에티오피아의 그즈으어를 배운 그는 서로 다른 전통 안에서 반복되는 믿음을 발견했다. 소리와 운율에는 사람의 넋을 붙잡고, 의지를 움직이며, 개인 사이의 벽을 허무는 힘이 있다는 믿음이었다.

여기서 '천사'는 예쁜 은유가 아니다. 인간과 신 사이에 놓인 중간적 존재, 개별적 자아를 넘어 더 큰 질서에 접속하려는 존재의 이름에 가깝다. 피코에게 '천사들의 문법'은 인간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언어의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 숭고함은 곧장 어두운 질문을 낳는다.


말이 사람을 선으로 이끌 수 있다면, 악으로도 이끌 수 있다. 청중이 연설에 홀리고, 군중이 구호에 묶이고, 한 개인의 판단이 리듬과 반복 앞에서 느슨해진다면 자유의지는 어디에 남는가. 이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언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아름다움이 조종의 기술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묻는다.


르네상스는 흔히 인간의 발견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는 르네상스는 조금 더 소란스럽고 불안하다. 유럽 바깥의 문헌이 이탈리아 인문주의 세계로 밀려들고, 고대의 텍스트가 다시 읽히고, 멀리 떨어진 문화권의 직관이 뜻밖의 닮은꼴로 나타나던 시대다.

말은 천사를 부르기도, 군중을 움직이기도 한다. ‘천사들의 문법’은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생애를 통해 언어의 숭고함과 위험을 함께 묻는다. AI 생성 이미지

말은 천사를 부르기도, 군중을 움직이기도 한다. ‘천사들의 문법’은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생애를 통해 언어의 숭고함과 위험을 함께 묻는다.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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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확장됐고, 세계는 넓어졌으며, 그만큼 기존 질서의 바닥도 흔들렸다. 피코의 900 논제가 교회의 경계와 충돌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모든 진리를 하나로 묶겠다는 시도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위험했다. 그것은 하나의 교리, 하나의 제도, 하나의 심판 체계 안에 인간을 붙들어두려는 세계와 맞설 수밖에 없었다.


윌슨-리는 이 지적 모험을 딱딱한 사상사로만 다루지 않는다. 피코가 스승과 친구에게 보낸 편지, 청문회에 선 장면, 메디치 가문의 여성과 얽힌 일화, 서른한 살의 수수께끼 같은 죽음까지 한 인간의 삶을 따라가며 르네상스의 공기를 되살린다. 그래서 이 책의 피코는 박제된 천재가 아니라, 너무 많이 알고 너무 멀리 가려 했던 청년으로 읽힌다. 그의 생은 짧았지만, 질문은 길게 남았다. 말은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고 믿는 것을 가장 먼저 빼앗는 힘인가.


이 질문은 오늘의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말에 홀린다. 정치인의 연설, 광고 문구, 알고리즘을 타고 반복되는 짧은 후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노래, 누군가를 열광시키거나 증오하게 만드는 구호가 매일 우리 곁을 지난다. 피코가 찾으려 했던 언어의 신비는 미신의 잔재가 아니라, 인간이 언어적 동물이라는 사실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말은 생각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생각을 만들고, 감정을 조직하고, 우리를 '나'에서 '우리'로 밀어 넣는다.


'천사들의 문법'이 남기는 여운은 그래서 밝지만은 않다. 언어가 인간을 천사의 반열에 올릴 수 있다면, 같은 언어가 인간을 군중의 일부로 낮출 수도 있다. 숭고함과 선동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피코가 본 것은 아마 그 경계였을 것이다. 르네상스의 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한 젊은 철학자의 생애를 통해, 이 책은 우리가 매일 쓰고 듣는 말의 바닥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인간은 말을 부린다고 믿지만, 때로는 말이 인간을 부린다. 이 오래된 불편함이야말로 이 책이 지금 다시 읽힐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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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문법 | 에드워드 윌슨 리 지음 | 김수진 옮김 | 까치 | 336쪽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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