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박신양 개인전 ‘제4의 벽’
그림·배우·관객이 뒤섞인 연극적 전시
콘크리트 거푸집 30톤 세운 낯선 전시장 풍경

전시장 벽이 낯설다. 흰 벽 대신 콘크리트 거푸집이 겹겹이 세워져 있다. 건물 공사장에서나 볼 법한 금속 판넬이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지하 전시장에 들어온 유로폼만 약 1500장. 무게로 따지면 30톤에 이른다. 그 위에 대형 회화들이 걸려 있다.

배우 박신양이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개인전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및 '감정의 발견'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박신양이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개인전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및 '감정의 발견'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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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둘러보면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든다. 작품을 보러 왔는데, 어딘가 작업 현장 같기도 하고 무대 같기도 하다. 배우 박신양의 전시 '제4의 벽'은 이 낯선 풍경에서 시작한다.


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신양은 전시장 벽부터 설명했다. "전시장을 작업실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저 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흰 벽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가 선택한 재료가 콘크리트 거푸집이었다.

유로폼은 건축에서 콘크리트를 붓기 위해 임시로 세우는 구조물이다. 콘크리트가 굳으면 떼어내 사라지는 벽이다. 박신양은 이 구조를 창작의 환경에 비유했다.


단단하게 굳어버린 개념 사이에서 새로운 시도가 만들어지는 순간, 콘크리트가 굳기 직전의 틈처럼 창작도 그런 긴장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전시는 이름부터 조금 다르다. '전시'가 아니라 '전시 쇼(show)'다. 전시장 안에서는 배우들이 등장한다. 그림 사이를 지나가기도 하고, 어느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관객은 작품을 보다가 잠깐 멈춰 선다. 전시인지 공연인지 잠시 헷갈린다.


박신양은 이 방식을 '연극적 전시'라고 설명했다. 그는 배우로 30년 가까이 활동해왔다. 연극과 영화, 드라마 무대에서 살았던 시간의 경험이 그림에도 이어졌다고 말한다.


"연극에는 '제4의 벽'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배우와 관객을 나누는 보이지 않는 벽입니다."


연극에서 배우는 무대 안에 있고 관객은 그 바깥에서 바라본다. 이 경계가 무너지면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관객이 공연 속 상황에 들어오는 장면이 만들어진다. 이번 전시의 제목도 여기서 왔다. 박신양은 이 경계를 전시장에서도 흔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배우 박신양이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 마련된 개인전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전시장에서 전시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박신양이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 마련된 개인전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전시장에서 전시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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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은 보통 한 방향의 시선을 전제로 한다. 관객이 작품을 바라본다. 작품은 거기 걸려 있다. 그는 이 관계를 조금 바꿔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전시장 곳곳에 '상황'을 만들었다. 배우들이 등장하는 설정은 작가의 작업실에 깃든 '정령'이다. 작가가 자리를 비우면 그림과 물감이 살아 움직인다는 설정이다. 이 장치는 관객의 시선을 여러 방향으로 흩어 놓는다.


누군가는 그림을 보고, 누군가는 배우를 보고, 누군가는 공간 전체를 바라본다. 박신양은 이를 "다층적인 시선"이라고 표현했다.


"전시는 보통 내가 작품을 본다는 관계가 됩니다. 저는 관객이 이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전시장에는 약 150점의 작품이 걸려 있다. 대부분 크기가 크다. 작가는 이 작품들을 옮기는 일 자체가 전시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말했다.


"그림은 혼자 걸어가지 않습니다. 전시를 하려면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이다. 작품의 출발점은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감정이었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오래 붙잡고 있었던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처음에는 친구가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친구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감정이 현대 사회에서 점점 이야기하기 어려워지는 종류의 감정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아주 친하거나 술을 많이 마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필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장 안에서는 그림만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도 움직이고 시선도 움직인다. 누군가는 캔버스를 오래 바라보고, 누군가는 배우가 지나가는 장면을 따라 걷는다. 어떤 관객은 잠깐 멈춰 서서 둘을 동시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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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서 말하는 '제4의 벽'은 원래 무대와 객석을 나누는 경계다. 이 전시장에서는 그 경계가 어디 있는지 조금 애매해진다. 관객은 그림을 보러 왔지만, 어느 순간 장면 안에 서 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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