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산집』 출판 불허, 말살된 기록 38년 만에 부활

일제강점기, 일본은 1909년 2월 '출판법'을 제정해 조선에서 발간되는 모든 서적을 사전 검열했다. 이는 단순한 출판 규제가 아닌, 민족정신을 억압하고 독립 의지를 꺾기 위한 통치 전략이었다.

향산집 검열본(진성이씨 향산고택 기탁자료)

향산집 검열본(진성이씨 향산고택 기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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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탄압은 독립운동가 향산(響山) 이만도(1842~1910)의 문집 『향산집』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향산집』 검열본은 1931년 조선총독부에 제출돼 검열을 거친 후 반환된 것으로,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이 일부를 소장하고 있다. 반환된 문집 표지에는 '직재집(直齋集)'이라는 명칭이 남아 있다.


붉은 도장과 줄, 지워진 조선의 역사 퇴계 이황의 13대손인 이만도는 1910년 국권 피탈 소식을 듣고 단식으로 순국했다. 그의 후손과 제자들이 문집 간행을 추진했으나, 일제의 검열 없이는 발간이 불가능했다. 검열분은 전체 14책 중 본집 2책, 별집 1책 등 3책만이 현존하며, 나머지는 출판 불허와 압류로 사라졌다.

검열 본에는 '금상(今上)', '성상(聖上)' 등 조선 국왕을 지칭하는 표현과 임진왜란 관련 서술이 집중적으로 삭제됐다. 문제 된 문구 위에는 붉은색 '削除' 도장이 찍히거나 붉은 원과 밑줄이 표시됐다. 이는 일본이 조선의 역사 자체를 왜곡·말살하려 한 의도를 보여준다.


"치안방해" 명목, 독립정신 기록 봉쇄 조선총독부는 『양산집』의 출판 불허 사유를 "이만도는 일본과의 조약 체결에 반대해 의병을 일으키고, 한일병합 직후 단식 자결한 자로, 그 내용이 치안방해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특히 부록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을 강요하고 이완용 등 5인이 이를 허락해 민영환 등이 자결한 사건"이 기록돼 있었다. 일본은 이 같은 역사적 사실 공개를 철저히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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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이 불허된 『향산집』은 해방 후인 1948년에야 완간됐다. 이는 검열과 압류로 사라진 기록이 38년 만에 되살아난 사례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향산집』은 일제의 폭압적 출판검열과 이에 맞선 독립운동가들의 분투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라며 "향후에도 이런 투쟁의 기록을 발굴·보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향산집 검열본(진성이씨 향산고택 기탁자료)

향산집 검열본(진성이씨 향산고택 기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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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취재본부 권병건 기자 gb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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