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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인파·좁은 동선·책임자 부재…'출구없는' 안전[K스타 출국 전쟁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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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 K컬처, 안전은 제자리
공항에 팬 몰려도 시스템 부재
한국은 설계 없이 대응만 반복

편집자주K컬처는 이제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스타의 출국은 더 이상 개인 일정이 아닌 대중과의 '공적 만남'이자 문화 콘텐츠의 일부가 됐다. 하지만 공항에서 벌어지는 무질서한 환송 풍경은 산업의 밝은 면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다. 본 기획은 '문화의 확장과 공공 안전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팬덤 문화의 자율성과 대중의 이동권, 공항의 운영 효율성과 같은 복합적인 요소 속에서, 정책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가. 실제 현장의 사례와 관련 기관의 대응, 국내외 정책 비교 등을 통해 K컬처 시대에 걸맞은 공항 안전 관리의 방향성과 팬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모색해보고자 한다.

챗GPT로 만든 가상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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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핼러윈 참사로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단순한 비극을 넘어, 군중 밀집에 따른 안전사고는 예고 없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5년 이번엔 공항이 새로운 안전 사각지대로 떠오르고 있다. 인기 스타의 출국일이면 수백 명의 팬이 좁은 출국장 통로와 게이트 앞에 구름처럼 몰려든다. 촬영 경쟁에 경호원과 일반 승객까지 뒤엉키며, 공항은 순식간에 무질서에 빠진다.


군중 안전 전문가들은 공항 구조상 밀폐된 공간이 많아 압사 사고에 특히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미국 서포크대학교(Suffolk University)의 G. 키스 스틸(Keith Still) 교수는 연구 자료에서 "1㎡당 5명 이상이 밀집되면 신체 접촉이 급격히 증가하며, 6명을 넘어서면 인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밀집 사고는 세계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2022년 인도네시아 말랑에서는 축구 경기 후 경찰과 충돌한 관중이 출구로 몰리며 135명이 압사했고, 1990년 사우디 메카에서는 성지순례 도중 터널 안에서 1426명이 숨졌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도 대피 인파 속에서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사고의 공통점은 예고된 대규모 군중, 좁은 동선, 책임자 부재다.


현재 한국 공항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은 항공사, 조업사, 유관기관과 협업해 안전관리시스템(SMS)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스타 출국 시 팬 운집에 대한 대응 체계는 명확하지 않다. 허술한 안전 구조는 곧바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인구 밀집도에 따른 위험도 분석 자료. 키스 스틸 서포크대 교수 홈페이지

인구 밀집도에 따른 위험도 분석 자료. 키스 스틸 서포크대 교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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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재난…또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될 수도

안전 시스템은 사고 이전에 작동해야 한다. 해외 주요국은 스타의 이동이 대중 밀집을 유발하는 산업 구조라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체계 안으로 끌어들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X)은 연간 4만 달러(약 5700만원)를 지불해야 이용 가능한 프라이빗 터미널(Private Terminal)을 운영 중이다. 수하물 처리부터 보안, 탑승까지 모든 과정이 일반 승객과 완전히 분리된다. 교통안전청(TSA)은 VIPR(VIP Intermodal Prevention and Response)팀을 구성해 공항·철도 등에서 군중 밀집형 이벤트를 선제적으로 관리한다.

영국 히드로공항은 '윈저 스위트'라는 VIP 전용 터미널을 운영하며, 공항공사·경찰·연예기획사가 협력해 팬 대기 구역과 스타의 이동 시간을 조율한다. 일본 하네다공항은 아이돌 소속사와 협약을 맺고 일반 동선과 물리적으로 분리된 스타 이동 경로를 마련한다. 출국 일정은 비공개이며, 사전에 조율된 동선에 따라 움직인다.


태국은 문화청이 스타 출국 시 팬 행동 가이드라인을 제작·배포하고, 팬 커뮤니티 대표가 현장 통제를 맡는다. 중국 상하이 푸둥공항은 자동 감지 센서로 밀집도를 감시하며 기준치를 넘을 경우 경보가 울린다. 캐나다 토론토공항과 프랑스 샤를 드골공항은 '문화 콘텐츠 이동 보안 프로토콜'을 문서화해 시행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반복되는 팬 운집에도 이를 제도화한 사례가 드물다. 지난해 7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시행령' 개정으로 다중운집인파사고가 별도의 사회재난 유형으로 신설됐고,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이 재난관리 주관기관으로 지정됐다. 같은 해 11월 행안부는 문체부·국토부 등 중앙부처와 지자체,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다중운집인파사고 정책협의체'를 출범시켰지만, 공항 현장의 혼란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협의체 구축 등 실효성 있는 '정책 설계 로드맵' 필요

지금처럼 공공기관, 연예기획사, 팬 커뮤니티가 각자 움직이는 구조에선 책임과 권한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혼란을 제도적으로 줄이기 위해선 최소 세 가지 차원의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정보 공유와 협의 체계의 정립이다. 스타 출국은 예고된 군중 이벤트인 만큼, 문체부·경찰청·공항·주요 연예기획사가 참여하는 상시 협의체를 구축해 출국 일정, 이동 동선, 예상 인원 등을 사전에 공유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모니터링 및 위치 데이터를 활용한 예측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라 시차 분산이나 동선 조정 등의 선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구름 인파·좁은 동선·책임자 부재…'출구없는' 안전[K스타 출국 전쟁⑤] 원본보기 아이콘

둘째, 현장 관리와 질서 유지다. 공항 내 팬 응원은 사전 협약된 구역으로 한정하고, 해당 구역에는 민간 경호 인력과 안전요원을 배치한다. 팬 커뮤니티와 협업해 고성 금지, 체류 시간 제한 등의 행동 매뉴얼을 마련하고, 공항 측은 물리적 구획을 통해 동선을 분리해야 한다. 출국 정보의 무분별한 유출을 막기 위해 기획사·항공사·공항 간 정보 보호 협약을 체결하고, 온라인상 정보 거래를 단속할 별도의 '정보거래 TF'(전담팀)도 신설해야 한다.


셋째, 팬 행동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자율 규율 체계 확립이다. 문체부는 팬 커뮤니티와 함께 '공공장소 행동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구호·촬영·집결 방식 등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위반 시 경고 및 퇴장을 명시한 '공공질서 조항'이 실효성을 담보하는 핵심 장치가 될 수 있다.


자율과 책임의 선 긋기…"성숙한 합의 구조 필요"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군중 밀집 현상이 단순한 문화현상이 아니라, 공공 안전과 행정력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요구하는 사회적 과제라고 말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1980~1990년대에는 놀이공원 등 밀집 시설에 경찰이 상시 배치됐지만, 현재는 해외 활동을 위한 K팝 스타 출국마다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은 행정력 낭비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과 민간이 역할을 분담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구조를 새롭게 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손승현 법무법인 세담 변호사는 "공공장소의 질서는 시민사회 성숙도를 보여주는 척도"라며 "공항이라는 공적 공간에서는 팬이든 경호원이든 기본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K컬처의 사회적 영향력과 산업적 기여를 고려할 때, 반복되는 팬 운집 현상을 단순한 문화 현상이 아니라 시스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국민적 공감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면 '패스트트랙' 제도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결국 중요한 것은 스타와 팬이 서로의 공간과 권리를 존중하는 성숙한 합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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