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때 대학로에서 첫 연극을 봤다. 교수님이 감상문을 써오라고 한 연극은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사천의 착한 사람들'. 현대 연극에 큰 영향을 끼친 거장의 대표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때는 수년 뒤였다. 연극은 재미없었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다. 다만 연극 관람이라는 경험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배우들이 육성으로 만들어내는 울림은 거대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극장 공간을 휘돌아 귓전을 때리는 느낌은 생경했다. '혹 신의 계시를 받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고향에서 관람이라고 하면 기껏해야 영화 정도였다. 연극은 언감생심이었다. 서울에서 누리는 막대한 문화 혜택을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28년 전 날카로운 첫 연극의 추억 때문에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강조하는 '지역 문화 균형 발전'이라는 비전에 100% 공감한다. 지역 문화 균형 발전은 문체부가 최근 발표한, 향후 10년의 문화정책 중장기 비전을 담은 '문화한국 2035'의 6가지 핵심과제 중 첫 번째다. 문체부는 지역 문화 균형 발전을 위한 최우선 실행과제로 국립예술단체·기관 지역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뭔가 서두르고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문체부의 문화한국 2035 브리핑 현장에서 준비가 어설프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현장에서는 국립예술단체의 지방 이전이 지난해 11월 '문화한국 2035(당시에는 '문화비전 2035'였다)' 공청회 당시에는 자료집에도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자료집에 담지 않았지만 논의는 그 이전부터 계속했다는 문체부의 답변은 궁색해 보였다.

서울예술단 '천 개의 파랑' 공연 장면   [사진 제공= 서울예술단]

서울예술단 '천 개의 파랑' 공연 장면 [사진 제공= 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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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중요한 예술단체 단원들과의 소통은 제대로 되지 않는 모습이다. 문체부는 중요한 몇 분들하고 의견 교환을 하면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일방통행식 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 21일 문체부가 마련한 국립극장 직원들과의 간담회에 국립극장 예술노조 소속 단원들은 간담회를 거부하고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예술노조는 근조화환을 극장 곳곳에 설치하며 문체부가 추진하는 국립극장 법인화 방침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키도 했다.

자칫 예술단체 지방 이전이 단체 자체를 와해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없지 않다. 문체부가 가장 먼저 내년 광주로의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예술단의 경우 아기 엄마인 단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전 시 탈퇴하는 단원이 많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단원들이 탈퇴해 빈 껍데기인 단체만 이전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근본적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국립예술단체의 지방 이전이 문화 균형 발전을 위한 최선의 방안인지, 되려 지방에서 자체적으로 예술단체를 육성하도록 돕는 방안이 더 낫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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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단체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지방 문화 균형 발전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말한다. 다만 지금처럼 급하게 추진할 일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 입장에서는 지방 이전이 쉽지 않은 과제인 만큼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듯싶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예술단체 전체가 반대 성명을 내는 상황이라면 좀 더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현재의 갈등을 추후 건설적 논의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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