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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주주들의 시간을 멈춘 고려아연 4750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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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주주들의 시간을 멈춘 고려아연 4750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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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0주.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 출석 주식 수의 0.04%에도 못 미치는 주식이 주주들의 시간을 멈췄다.


지난 2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임시주총에서 박기덕 의장은 출석 주식 수 발표 없이 의사봉을 세 차례 두드리는 ‘얼렁뚱땅’ 개회를 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주주명부 중복위임장 탓으로, 오전 10시께부터 시작된 확인 공방은 오후 4시까지 이어졌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예민한 주총일수록 적법한 절차를 따르기 위해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현장에 온 주주들은 “요깃거리나 하고 와야겠다”며 마치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회사의 발전과 투명한 진행을 위해서라면 몇 시간 기다리는 것쯤 대수롭지 않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고려아연 측은 귀를 의심케 하는 변명만 내놨다. 회사 관계자는 “회사에서 준비한 엑셀 파일을 영풍·MBK 파일과 합쳤는데, 계속 에러가 뜬다. 정확한 수치가 안 나온다”고 설명했다. 2층 미디어 룸에서 생중계로 듣고 있는 기자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전체 출석 주식 수에서 중복 주식 수를 빼는 단순 계산이 해가 중천에 뜨도록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변명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일부 주주들은 혹여 고려아연이 다른 꼼수가 있는 건 아닌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따져 묻기 시작했다. 사측은 그저 오해하지 말아 달라는 답변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결국 주주들을 6시간가량 기다리게 한 4750주는 무효처리가 됐다. 개회 동시에 공개됐어야 할 출석 주식 수는 오후 4시10분이 돼서야 확인됐다. 언론에서 최 회장의 우호 세력으로 분류되는 기업들이 주총 불참을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온 후였다.

긴 기다림 끝에 시작된 주총은 특정 주주와 회사의 유치한 자존심 싸움으로 번졌다. 박 의장은 시작과 동시에 영풍의 의결권 제한부터 설명했고, 이때부터 주총장은 고성이 오가는 싸움터가 됐다. 회사의 경영 방침과 이사진들의 자격 여부를 꼼꼼히 따져보는 장이어야 할 주총이 의결권 제한의 적법성과 외국기업에 대한 상법 적용 여부만 따지는 상법 강의장으로 전락했다.


여유롭던 소액 주주들의 표정에는 간절함이 내비치기 시작했다. 귀한 시간 쪼개 발걸음한 이들의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적어도 변호사들의 상법 조문 낭독이나 듣자고 온 건 아닐 것이다. 이제 양측의 공방은 법정 다툼으로 비화할 모양새다. 고려아연은 영풍 측 의결권 제한에 대한 공식적인 법원의 판단을 받고, 명확한 경영 계획과 회사 비전에 대한 토론으로 주주들의 선택권을 보전해야 한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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