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쓰레기의 재발견
버리는 식재료 새 먹거리 재탄생
선조 지혜 담긴 전찌개 대표적
푸드업사이클링 산업 확대해야
오트 밀크를 짜고 남은 귀리박으로 만든 쿠키(미국 리뉴얼밀)와 맥주를 양조한 뒤 나온 맥주박을 활용한 파스타(덴마크 어그레인), 사케 제조 뒤 남은 주정으로 생산한 진(일본 리버사이드 디스틸러리) 등 3개 음식의 공통점은 '푸드 업사이클링'을 통해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푸드 업사이클링은 식품 부산물이나 못생겨서 팔기 어려운 식재료를 다시 먹거리로 만드는 개념으로, 가장 효율적인 음식물 쓰레기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낯선 용어지만, 우리가 전혀 모르는 이야기는 아니다. 추석이 끝나면 아빠가 꼭 끓여주던 추억의 음식이 있다. 바로 '전찌개'. 진하게 우려낸 멸치 육수에 고춧가루를 팍팍 풀고 경상도에선 '정구지 찌짐'이라 불리는 부추전과 생선전을 넣고 끓이면 완성이다. 땀 흘리며 매콤하면서 걸쭉한 국물을 들이켜면 기름진 음식들로 니글거렸던 속이 확 풀리곤 했다. 전찌개는 기자가 경험한 가장 오래된 푸드 업사이클링이 아닐까 싶다. 냉동고에 한참 박혀 있다 음식물 처리기로 갈 뻔한 전들을 구한 것이니 푸드 업사이클링과 다름없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 10명 중 8명이 푸드 업사이클링에 대해 모른다고 답변할 정도로 식품 부산물 재활용 제도에 대한 인지도는 낮다.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식품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도 여전하다. 이 때문에 푸드 업사이클링 시장을 개척한 뉴욕, 코펜하겐, 도쿄를 다녀왔다. 아만다 오엔브링 미국 업사이클링푸드협회(UFA)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해 취재 중 만난 이들 모두 지구온난화 시대 푸드 업사이클링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전 세계에서 매년 수확된 농산물의 30%가 넘는 13억t이 버려진다. 국내 상황도 심각하다. 하루에 쏟아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1만7805t. 길이 50m·너비 25m·높이 2m 규모 올림픽 수영장(2500㎥)을 7번 채우고도 남는 양이다. 전 세계 온실가스의 10%가 음식물 쓰레기 폐기 과정에서 나온다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음식물 쓰레기가 이상기후라는 부메랑이 돼 인간을 해치는 상황에서 선진국들은 푸드 업사이클링을 일상 속에 들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뉴욕 대형마트에서는 관련 제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한국 시장은 태동하는 수준이다. 스타트업 리하베스트와 CJ제일제당, OB맥주, 삼성웰스토리 등이 뛰어들었을 정도로 손꼽힌다.다행인 것은 전찌개에서 보듯 우리에게는 숨겨진 푸드 업사이클링 근육이 있다는 점이다. 용어를 몰랐을 뿐 선조들은 이미 남김없이 먹는 법을 알고 있었고, 우리도 의지만 있다면 그 근육을 다시 키울 수 있다. 수박껍질을 스낵으로 만드는 미국 스타트업 라인드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박을 다 먹고 남은 껍질을 채썰어 나물무침 해먹은 우리 민족이 푸드 업사이클링의 원조다."
특히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푸드 업사이클링이 필연인 곳이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45.8%(2020년 기준)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 그룹에 속해 있다. 땅덩어리가 좁아 버려지는 식품 부산물을 감당하기도 어렵다. K-푸드의 지속적인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푸드 업사이클링이 우선 과제가 돼야 하는 셈이다. CJ제일제당이 깨진 쌀로 만든 '바삭칩'은 적은 양이지만 미국과 호주까지 진출했다고 한다. 푸드 업사이클링은 환경에도, 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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