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기대에 인플레 튈까 우려
"물가안정기 아니다" 경고성 보고서
정부에도 압박 말라는 메시지

한국은행 로비에 걸린 물가안정 현판.

한국은행 로비에 걸린 물가안정 현판.

AD
원본보기 아이콘

"역사적으로 물가안정기로의 진입에 실패했던 사례를 보면, 마지막 단계(last mile) 리스크에 대한 부주의에 기인하는 경우가 다수였다."(29일 한국은행 '물가안정기로의 전환 사례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유지되고 국내 물가상승률 지표도 내려가면서 연내 피벗(pivot·방향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한은은 이 같은 기대를 억누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은이 발표한 이달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월 기대인플레이션율(소비자들의 향후 1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은 전월보다 0.2%포인트 하락한 3.0%를 나타내면서 두 달 연속 떨어졌다. 여기에 Fed의 금리 인하 기대까지 겹치면서 소비자심리지수는 두 달 연속 오르며 5개월 만에 100을 상회했다.


한은 입장에서는 이렇게 피벗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과도해지는 모습이 지표로 나타나는 게 달갑지는 않은 분위기다. 시장의 섣부른 기대가 오히려 물가하락 기조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이창용 총재가 강조한 '라스트마일(목표 물가 달성까지의 최종 구간)'의 끝이 불투명한 만큼, 한은은 앞서나가는 시장을 진정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총재 역시 본인의 '사견'임을 강조하면서도 6개월 정도는 금리 인하를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지난 29일 통화정책국이 공개한 보고서는 한은의 걱정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한은은 이번 보고서를 통해 물가 하향 안정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는 점차 물가 지표가 낮아지는 모습이나 물가 안정기 진입과 관련된 마지막 단계, 라스트 마일 리스크는 잔존한다”고 밝히며 “유류세 인하 종료나 지연된 공공요금 인상 시 비용충격이 추가로 발생할 여지가 있고 가격 조정 모멘텀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보고서는 1월13일 통화정책방향 회의 전 금융통화위원들에게 보고된 것으로, 통상 내부 참고용으로만 활용되는 자료였다. 다만 '내놓을 가치가 있는 보고서의 경우 대외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위해 공개하자'는 총재와 금통위원들의 방침에 따라 밖으로 나온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공개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자료도 (분기별로 발표되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공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음 통화정책보고서가 나올 때(3월)까지 기다리면 이슈의 적시성이 떨어질 수도 있어 이례적으로 지금 내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 같은 경고성 보고서를 통해 시장뿐 아니라 정부를 향해서도 금리 인하 압박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으로 보인다. 1980년 미국에서 섣부른 금리 인하로 다잡은 물가를 놓쳐버렸던 '폴 볼커의 실수'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당시 Fed 의장이었던 볼커는 선거를 앞두고 압박에 밀려 금리를 하향 조정했고, 이에 튀어 오른 물가를 만회하기 위해 9%대였던 금리를 21.5%까지 올려야 했다.

AD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상반기 재정 조기 집행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이는 총선 전에 풀 수 있는 걸 다 풀겠다는 취지가 크다"며 "그렇다면 상반기에 여러 이유로 한은이 물가를 잡기에 어려워질 수도 있는데, 하반기에는 내수가 더 나빠져 금리 인하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여기저기서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있을 금리 인하 압박에 대한 한은의 '디펜스(방어) 마스터 플랜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