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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vs 진보 '균형추' 역할했던 美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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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인사에서 성별·경력·지역·종교 다양성 보장돼야" 생전 주장

“로스쿨은 이 나라의 미래 지도자들을 육성하는 훈련장이기 때문에 사회 지도층으로 가는 길은 모든 인종 및 문화 배경을 가진 재능있고 자격을 갖춘 개인들에게 활짝 열려야만 한다.”


2003년 대학 입학에서 소수 인종을 배려하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의 위헌성을 다툰 ‘그루터 대(對) 볼린저’ 판결에서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이 남긴 의견이다. 인종적 요소를 고려하는 미시간대 로스쿨의 신입생 선발 정책에 대한 대법관들의 의견이 4 대 4로 팽팽히 맞서던 때 오코너가 결정적으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며 합헌 판결이 나왔다. 이처럼 첨예한 보수 대 진보 대립 구도의 미 연방대법원에서 오코너는 중심을 잡는 ‘균형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 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이 지난 1일(현지시간)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 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이 지난 1일(현지시간)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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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권, 동성결혼 등 소수자 인권 수호 판결

지난 1일(현지시간) 향년 93세로 사망한 오코너는 1981년 당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미 역사상 첫 여성 연방대법관에 지명됐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에게 임명된 오코너는 기본적으로 중도 보수 성향이었다. 하지만 이념을 떠나 사회 소수자의 인권을 수호하는 굵직한 판결을 다수 내리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1992년 임신 기간과 부모 및 배우자의 동의 여부에 따라 낙태권을 제한하는 펜실베이니아 주법의 위헌성을 다툰 사건(‘가족계획연맹 대 케이시’)에서 낙태권을 제한해선 안 된다는 입장에 선 것이 대표적이다. 앤서니 케네디·데이비드 소터 대법관과 함께 쓴 판결문에서 오코너는 “낙태할 권리가 미국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돼 합법”이라는 ‘로 대 웨이드’ 판결(1973)의 핵심 입장을 재확인했다.


2003년 경찰이 동성간 성행위자를 체포한 사건에서는 체포 근거가 된 텍사스 주 법령에 대해 “동일한 성관계에 대해 동성 커플만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수정헌법 제14조를 위반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2015년 미국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의 밑거름이 됐다.


특유의 실용주의자적 관점이 엿보이는 소수의견도 남겼다. 2005년 3월 연방대법원이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사형이 위헌이라고 판결할 때다. 오코너는 소수의견에서 “미성년자 사형에 대한 획일적인 판결은 오도된 것이며, 미성년 범법자들의 성숙도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 나은 접근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어떤 17세 미성년자는 평균적인 젊은 성인들보다 더 성숙하다는 것을 일반적인 경험으로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오코너 대법관 인준은 미국 역사적 전진의 증거”

1930년 텍사스주 엘 패소의 목장집에서 장녀로 태어난 오코너는 16세에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해 경제학을 전공한 뒤 19세에 같은 대학 로스쿨에 진학했다. 22세에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변호사가 아닌 비서직을 제안받자 이를 뿌리쳤다. 대신 사무실도 보수도 없는 캘리포니아 주 지방검사보로 법조인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선출직인 애리조나 주 검찰 부총장을 거쳐 주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진출, 1973년 미국 여성 최초로 주 상원 원내대표가 됐다. 이후 법조계로 돌아와 1975년 애리조나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돼 1979년까지 활동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별세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미국 연방대법관이 지난 2009년 8월 12일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에게 '자유의 메달' 훈장을 받는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별세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미국 연방대법관이 지난 2009년 8월 12일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에게 '자유의 메달' 훈장을 받는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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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알츠하이머를 앓는 남편의 병 간호를 위해 대법관직을 그만 둔 오코너는 2009년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미 정부로부터 수여받았다. 같은 해 자신이 명예총장으로 있던 윌리엄 앤 메리 대학이 개최한 토론회에 패널로 나서 “성(性)과 직업적 경력, 지역 및 종교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인사들이 대법관이 될 수 있도록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방판사는 한번 임명되면 평생 판사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법부 규정에 따라 퇴임 후에도 종종 평판사로서 재판도 했다.


2018년 10월 오코너는 친구 및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츠하이머 투병 사실을 알리며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편지에서 그는 “치매를 앓고 있는 내 마지막 삶은 힘겹겠지만, 여전히 내 삶에 주어졌던 많은 축복들에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애리조나 사막에 살던 어린 카우걸(cowgirl)이 연방대법원의 첫 여성 대법관이 되리라고는 나조차 상상하지 못했다”며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며 글을 끝맺었다.


오코너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2일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내 “그의 역사적인 대법원 지명을 둘러싼 희망을 기억한다”며 과거 상원이 반대표 없이 99표의 찬성으로 오코너 전 대법관을 인준한 것은 미국이 역사적으로 전진한다는 증거였다”고 평했다.


미 뉴욕타임스는 “오코너 전 대법관은 대법원의 넓은 이념 지향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미국 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말 그대로 당대 미국에서 가장 파워풀한 여성이었다”고 전했다.





홍윤지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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