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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이 책은 해피엔딩일까 배드엔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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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
직장생활의 미묘한 심리전을 음식을 통해 그려내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책을 먼저 읽은 뒤 기사를 읽는 걸 권합니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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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 회식입니다"라는 상사의 말에 "저는 오늘 선약이 있는데요"라고 답하고,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오늘은 야근합시다"라는 공지에 "제가 할 일은 다 끝났으니 들어가 보겠습니다"라고 말한다는 일화들. 이러한 이야기들을 ‘MZ세대 풍토’라는 식의 이름으로 뉴스나 인터넷 게시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게는 조금 비현실적으로, 흔히 MSG(인공조미료)라는 이름의 자극이 더해져 흥미 위주로 흐르게 되는 글이지만 이러한 글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퍼지는 이유는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서일 것이다.

이러한 류의 이야기들은 대게 이후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백설 공주는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식의 해피엔딩도 없고, 그렇다고 ‘그 사원은 징계위원회에 올라 결국 권고사직 됐습니다’라는 배드엔딩도 없다. 글은 그렇게 그 정도로 소비되고 끝난다.

지난해 일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다카세 준코의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에는 ‘MZ세대 풍토’의 현실판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배경은 식품 라벨 패키지를 만드는 회사다. 주요 인물은 남자 사원 니타니, 여자 사원 오시오와 아시카와 세 명이다. 셋의 나이는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식 갈등에 대입하면 니타니는 불만은 있지만 회사 일은 충실하게 해내는 4050, 오시오는 야망은 있지만 흔히 사회생활에 익숙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2030, 아시카와는 그 자체가 전통적인 직장인을 상징한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전통의 흐름 안에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니타니와 오시오는 아시카와가 싫다. 아시카와가 저성과자임에도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보호받기 때문이다. 니타니는 아시카와와 사귀는 관계인데도 그렇다. 그는 아시카와 같은 상냥하고 착한 여성과 사귀는 게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시카와가 자신과 함께하고 싶어하는 전통적인 가정의 모습이 싫다. 오시오는 조퇴한 아시카와의 일을 다른 사람들이 대신하는 게 싫다. 니타니와 오시오가 아시카와에게 저항하는 방법은 아시카와가 일을 제대로 못 한 대신 만들어오는 간식을 몰래 거부하는 일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만들어진 갈등은 결국 오시오가 회사를 그만두고, 니타니가 다른 지사로 전근을 하면서 막을 내린다. 오시오는 니타니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우리는 서로 돕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예전에는 가지고 있었던 걸, 손에서 놓아가는 거죠. 그러는 게 살기 편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리고 송별회 당일 "모처럼 송별회를 준비해주셨는데 죄송합니다, 몸이 좋지 않아서요"라고 운을 뗀 후 "그런데 사실 별로 가고 싶지 않았기에 머리가 아파서 잘됐다 하는 마음도 있어요"라고 선언해 버린다. 패배의 선언이면서 승리의 선언.


송별회에서 니타니는 본인이 몰래 버리던 아시카와의 케이크를 맛있게 먹으며 연인인 그녀를 바라본다. 이와 잇몸 사이 구석구석 파고드는 달콤함을 느끼며 맛있다고 다소 과장된 칭찬을 하면서 아시카와를 바라본다. 그리고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참을 수 없는 귀여움을 느낀다.


이것은 공감과 이해인가,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시킨 것인가. "오래오래 행복했어요"라는 믿기진 않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가게 하는 수식이 없으니 모를 수밖에. 이것이 불행할 것이다, 행복할 것이다, 그 어떤 방향으로도 쉽게 결론 낼 순 없다. 이것이 가벼운 무게의 소설이 전해주는 묵직한 삶의 무게일 것이다. 혹자는 싸늘할 수 있고 혹자는 웃음 지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그게 우리의 직장생활이고 인생이겠지.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다카세 준코 지음|허하나 옮김|문학동네|1만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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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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