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교전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가자지구 내 사망자만 9500명에 육박하게 됐다. 이 중 어린이 사망자는 3900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무려 41%에 이른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린이 사망자 비율이 5% 남짓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치다.


지난달 30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병원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부상당한 아이와 아버지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다. 라파=AF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병원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부상당한 아이와 아버지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다. 라파=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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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에서 이처럼 어린이 사망자 비율이 압도적인 이유는 가자지구의 높은 출산율과 연관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엔(UN)에서 집계한 가자지구의 합계출산율은 2021년 기준 3.02명으로 우리나라보다 4배 이상 높다. 가자지구의 인구구조도 전 근대 국가의 전형적인 피라미드형 구조로 인구 대부분을 어린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10분에 1명꼴로 어린이가 죽어가고 있다는 말은 결코 허황된 표현이 아닌 것이다.

주기적인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식수·식량이 늘 부족하고 실업률은 70%에 육박하는, 그야말로 생지옥이라 불리는 가자지구의 출산율이 높은 이유는 이스라엘과의 인구경쟁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은 1970년대 4차 중동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줄곧 인구가 많아야 팔레스타인 지역 영유권을 더 강하게 주장할 수 있다며 경쟁적으로 출산을 장려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역시 아직도 출산율이 2.90명에 달할 정도로 주요 선진국들 대비 매우 높다. 국제사회에서 오죽하면 이 출산율 경쟁과 계속되는 포화 속에 희생당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두고 중동의 ‘요람전쟁(War of cradles)’이란 용어까지 붙였다. 경쟁적으로 더 많은 아이를 낳아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강화하고 민족주의를 고양시키는 정책을 강력하게 이끌어 온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출산과 영유권 강화를 직결시키는 정책은 바로 나치 독일이 주창했던 민족 생활권, 즉 ‘레벤스라움(Lebensraum)’ 개념에서 나왔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의 나라가 정작 그 나치 독일과 똑같은 정책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어른들이 만든 이 요람전쟁 속에 아이들은 설사 운이 좋아 전쟁터에서 살아남았다해도 강력한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특히 유년기에 품게 된 상대 국가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는 결코 쉽게 사라질 수 없다. 바로 내 눈앞에서 죽어나간 부모, 형제, 자매를 죽인 원수와 화해를 한다는 것은 살아남은 이들에겐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강경파들은 생존자들이 갖게 되는 강렬한 적개심과 분노를 정치적 기반으로 악용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어린이들의 사망, 학살 장면을 노출시키면서 확대, 재생산된 분노를 이용해 강경세력의 장기집권을 유도한다. 또한 이로 인해 촉발된 전쟁을 지렛대로 국민통합의 필요성을 빌미로 삼아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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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요람전쟁이란 근본적인 비극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스라엘군이 아무리 막대한 병력을 동원해 하마스를 제거해도 제2, 제3의 하마스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과 서방에서 중재안으로 내민 ‘2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 이전에 요람전쟁을 악용하는 양국의 정치적인 구도부터 깨트려야 진정한 평화협상을 위한 대화의 물꼬가 터질 것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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