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화 감독 영화 '더 문'
지구와 연결 고리 끊지 않고 귀환 시도
신냉전 속 미·러 우주 비행사 협력 닮아

우주 유영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반드시 묶으라!'다. 절대로 장비를 분실해선 안 된다. 우주선이나 우주복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잡아주는 연결 끈이 필수다. 우주 비행사는 15m 길이의 구부릴 수 있는 스테인리스스틸 케이블로 우주정거장에 몸을 붙들어 맨다. 릴을 우주복 고관절 부분에 매달고 다른 쪽 끝을 우주정거장 핸드레일에 끼운다. 또 1m짜리 케블라 끈을 사용해 우주정거장 작업장과 몸을 연결한다.


[슬레이트]우주서도 유효한 '보이지 않는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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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들은 우주복 가슴 부위에 매단 도구 상자에 담아 확실하게 잠가 둔다. 나머지 도구들은 짧은 고강도 케블라 끝에 매달거나 구부릴 수 있는 장비 끈에 걸어 둔다. 끈으로 묶기 전에는 어떤 도구나 장비도 건드릴 수 없다. 그런데도 끈에 달린 고리가 망가지거나, 끈으로 묶는 것을 잊을 때가 있다. 우주 비행사가 장비와 부딪혀 잠금 부위나 끈이 풀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1965년 미국의 첫 우주 유영이 대표적 예다. 제미니 4호의 해치가 열린 상태에서 헐거워진 장갑이 쑥 빠져버렸다.

김용화 감독의 영화 '더 문'에서 이상원 중령(김래원)은 규칙을 어긴다. 우주를 유영하며 작업하던 중 태양풍을 만나 만신창이가 된다. 황선우 대원(도경수)의 만류에도 스스로 연결 끈을 풀어버리고 우주 깊숙한 곳으로 사라진다.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예외 사례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메리 로치는 저서 '우주 다큐'를 준비하며 다수 우주 비행사를 인터뷰했다. 질문 가운데 하나는 "만약 어떤 우주 비행사가 우주 유영을 하다가 우주선 밖에서 죽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였다. 한 우주 비행사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연결 고리를 끊어버려야죠." 모두가 그 대답에 동의했다. 시체를 수습하려고 하다가 다른 승무원들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로치는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여압복을 입고 우주 캡슐에 들어가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본 사람만이 그런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우주에서 자유롭게 떠돌아봤던 사람만이 우주에서의 장례도 바다에서 선원을 수장하는 것처럼 불경스러운 일이 아니라 명예로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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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우 대원은 아픔을 받아들일 여유조차 없다. 자신 또한 사지에 내몰려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다. 김재국 전임 센터장(설경구)을 위시한 나로 우주센터 관계자들과 다국적 출신으로 구성된 미합중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 비행사들 등이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며 귀환 방법을 모색한다.


실제로 국제우주정거장(ISS)에는 적절한 구조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우주 비행사들은 심각한 비상사태가 발생할 시 러시아의 소유스 구명선에 올라타 도킹을 풀고 지구로 귀환하게 된다. 화물 운송 우주선이 지구 저궤도에서 좌초하면 우주여행을 하는 나라들이 합동으로 소유스호 같은 구조선을 보낸다.


공조가 계속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러시아는 지난해 ISS 프로젝트에서 탈퇴하고 독자적 우주정거장 건설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미국의 대러 제재에 반발해 조기 이탈하려는 모양새다. 공조 체계 붕괴가 신냉전 기류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는 ISS가 지구 중력에 의해 추락하지 않고 궤도를 유지하는 추진 제어 시스템을 맡고 있다. 이탈 시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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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기류에도 두 나라 관계자들은 여전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지난 2월에도 러시아연방우주청(로스코스모스)에서 보낸 소유즈 M-23 우주선이 ISS 도킹에 성공했다. 미국과 러시아 우주 비행사들을 태우고 ISS에 당도했던 소유즈 M-22 우주선이 지난해 12월 운석에 부딪혀 냉각수가 유출됐다. 고장 난 M-22 우주선은 무인 상태로 버려졌다. M-23 우주선은 임무가 연장된 우주 비행사들을 태우고 다음 달 지구로 귀환한다. '더 문'처럼 인류애라는 고귀한 끈에 이끌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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